
지난 시즌 두산의 2~4번은 실망스러웠다. 2번은 압도적으로 가장 약했고, 3·4번 생산성도 리그 평균치에 못 미쳤다. OPS 기준 지난 시즌 두산 2번은 0.696으로 리그 최하위였다. 3번은 0.856으로 8위, 4번도 0.832를 기록하며 6위에 그쳤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외국인 타자 헨리 라모스가 기대에 못 미쳤다. 타고투저 바람을 타고 각 구단 외국인 타자들이 맹타를 휘두른 데 비해 라모스는 퇴출 전까지 80경기 10홈런에 그쳤다. 타율 0.305로 3할을 넘겼지만, 외국인 타자에게 기대하는 장타가 아쉬웠다. 상위 타순에서 확실한 역할을 하지 못했고, 6·7번을 전전하는 경기가 잦았다.
강승호, 양석환 등 준수한 시즌을 보낸 국내 타자들도 앞선에서는 크게 힘을 못 썼다. 강승호의 경우 6번 타자로 216타석 동안 OPS 0.912를 기록했지만, 3번 자리에선 131타석 0.752에 그쳤다. 김재환 정도가 순번을 크게 가리지 않았다. 양의지도 꾸준하게 활약했지만 크고 작은 부상으로 485타석 밖에 나가지 못했다. KT로 이적한 허경민도 477타석에 그쳤다.

새 시즌 이승엽 감독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미야자키 2차 캠프 7차례 연습경기 라인업에 상위타순 고민이 묻어났다. 이 감독은 미야자키에서 김재환을 2번, 새 외국인 타자 제이크 케이브를 4번에 계속 기용했다. 2번째 연습경기부터 2번과 4번 자리만 변화 없이 줄곧 김재환과 케이브를 내보냈다. 3번 자리는 강승호와 양의지를 각각 3차례씩 세웠다. 양석환은 주로 5·6번에 배치했다.
2번 김재환이 특히 눈에 띈다. 지난 2년간 이 감독은 ‘전통적’인 2번을 선호했다. 단타 위주에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타자를 즐겨 썼다. 허경민을 비롯해 이유찬, 박계범, 조수행, 김재호 등을 돌려가며 기용했다. 이 감독 부임 이후 김재환이 2번을 친 건 2023시즌 22타석이 전부다. 그나마 기분전환을 위한 일회성 기용이었다. 재작년 김재환 2번 기용 당시 이 감독은 “4번 자리에서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아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지난 성향을 생각하면 ‘2번 김재환’은 파격적이다. 상위타순 위력을 끌어 올리려면 특별한 변화까지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감독은 지난 4일 인천공항 귀국 인터뷰에서 “지난해 데이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3번, 4번, 2번 순으로 찬스가 많이 걸리더라”면서 “중요한 타순인 만큼 여러 테스트를 계속해봐야 한다”고 했다. 연습경기뿐 아니라 실전에서 ‘2번 김재환’을 써볼 생각도 분명히 밝혔다. 이 감독은 “지난 2년간 2번에서 문제가 가장 많았다”며 “정규시즌에도 2번 김재환 카드를 써볼 생각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2번을 시작으로 3·4번까지 상위타순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한 이 감독의 실험은 시범경기 동안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 결과에 따라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파격의 라인업’을 들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