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원폭 피해자,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피폭되었던 한국인을 찾는 적십자사의 최근 광고 문구다. 마침 지난 7월에는 히로시마현의 요코타 미카 부지사가 한국인 피폭자들을 모신 합천의 위령각을 참배했다고 한다.
피폭자는 일본말로 히바쿠샤(被爆者)라고 부른다. 나는 그 용어와 한국인 히바쿠샤의 존재를 한 편의 연극에서 처음 접했다. 재일동포 작가 홍가이의 ‘I am a Hibakusha’.

물리학을 전공했던 특이한 경력의 작가가 구미권에서 1980년대에 발표했던 희곡이다. 발 빠르게 국내에도 소개되어 1990년대 초에 영국 팀의 내한공연이나(이화여대 내 공연), 그 작품을 각색했던 국내공연 ‘산타 히로시마’를 본 기억이 있다(극단 한강 제작).
작품은 원폭 투하 당시 피폭되었던 한국 여성 영주의 이야기다. 구사일생 살아남아 한국에 돌아온 영주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만 기형아를 출산하고, 이후 일본으로 밀항해 피폭사실을 알리고 보상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실제 현실 역사에 유사한 사례가 있다. 1960년대에 일본으로 밀항해 피폭사실을 알리고 책임을 추궁하다 강제 송환 당했던 손귀달씨를 비롯한 몇 여성들의 사례가 그것.
그런데 초기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던 한국의 히바쿠샤에 대한 공식적 인정과 사과의 시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역사는 우리가 원했던 순간에 적절하게 진행되지 않아 절망을 주기도 하지만, 물방울이 모여 암석을 녹이듯 긴 시간 속에 조망하자면 바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장대한 힘인지도 모른다.
곧 8·15다. 혹독한 식민지의 경험과 그럼에도 와주었던 광복을 기억하자. 우리들의 현실정치 역시 눈에 보이는 이전투구의 모습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이면에 바르고 선한 기운이 한 방울씩 모이고 있을 것이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