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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준비물 목록에 빠지지 않는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태어나 처음 입는 옷이다. 옛날엔 오래 살라고 옷고름 대신 명주실 끈을 길게 꼬아 붙이기도 했단다. 그런 배냇저고리를 삼베수의에 겹쳐놓은 영화 포스터(사진). 내달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숨’이다. 매일 자정, 하루의 끝과 시작이 만나는 아날로그 시곗바늘처럼 생사가 한 데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
방송인 송해의 말년을 다큐(‘송해 1927’)에 담기도 했던 윤재호 감독이 죽음의 여러 단상을 ‘숨’에 새겼다. 역대 대통령 6명의 장례지도를 맡은, 영화 ‘파묘’ 속 장의사의 롤모델 유재철씨, 유품정리사 김새별씨, 죽음을 준비하는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을 경유한다. 무연고자의 쓸쓸한 고독사 현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성스런 장례 풍경도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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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를 떨치던 사람도, 평범했던 사람도, 마지막은 결국 좁은 관속이 내 자리다.’
영화 말미 이 내레이션보다 강하게 남는 건 대구를 이루는 첫 장면이다. 아기가 힘차게 걸음마를 뗀다. 누구든 그리 삶을 시작하지만 마지막이 이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힘껏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건 최근 다시 본 SF 영화 ‘컨택트’(2016) 때문이다. 외계 언어를 배운 덕에 외계인들처럼 미래를 현재처럼 인지하게 된 주인공은 훗날 태어날 자신의 아이가 불치병으로 요절할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다. 아이가 살아낼, 짧지만 소중한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삶을 하루로 치면 자정과 자정 사이 저마다 다른 인생이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새로 시작될 아이의 하루에 맞추어 지나온 삶을 가누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지금 내 삶은 몇 시쯤 와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