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수당·금리·쌀값까지…가격개입에 멍드는 시장 경제

2024-11-11

정치권이 구직지원금과 은행 대출금리, 농산물까지 가격에 개입하는 법안을 쏟아내면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과점 구조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일일이 가격 결정에 개입하면 장기적인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최저임금의 40% 이상을 구직촉진수당으로 제공하고 청년의 경우 지급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구직자 취업 촉진 및 생활 안정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구직촉진수당을 최저임금과 연동하는 것으로, 이 경우 월 지급액이 현행 50만 원에서 최소 82만 5000원 수준으로 1.6배 이상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구직촉진수당이 노동시장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지 구체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지적한다. 구직촉진수당은 수급자의 구직 의욕을 고취시키는 효과를 내야 하는데 생활비로도 쓰이고 있어 오히려 도덕적 해이나 구직 단념 기간을 연장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이달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직장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쉬었음’ 인구는 256만 7000명으로 1년 전보다 24만 5000명 증가했다. 계속해서 구직촉진수당이 지급됐지만 쉬었음 인구는 2022년부터 2년 연속 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한 인구가 지난해 8월보다 5만 2000명 줄어든 것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쉬었음 인구의 29%는 20대·30대 청년이 차지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최저임금에 연동되도록 함으로써 자동으로 지급액이 올라가게 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격 개입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부담은 모든 국민이 나눠 진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구직촉진수당의 경우 구직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제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청년들이 구직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쓰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재정 투입은 그 효과가 드러나야 하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늘린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데 반해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것이다.

은행의 대출 가산금리 항목을 공개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은 “가산금리 항목을 공개하라는 것은 자동차 제조 원가 내역을 모두 공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어느 산업을 보더라도 이 같은 사례는 찾기 어려울뿐더러 은행들이 가산금리 항목에서 일부 비용을 빼더라도 다른 쪽으로 비용을 전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산금리 내역을 공개해도 대출금리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 실장은 “은행들에 이익을 내지 마라. (국가가) 은행의 이익을 고정시켜주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올해 상반기에도 쌀값이 떨어질 경우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거나 배추·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내려갈 경우 가격 하락분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내용의 경제 법안들을 다수 발의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가격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반시장적”이라며 “지나친 가격 개입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달 앱 수수료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의 막후 조율 작업이 난항을 빚자 법안을 통해 수수료율 상한선을 제한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최저임금, 독과점 시장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면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후생이 나빠지는 등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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