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유사시 북 공격 한국 단독 대응할 준비·각오 절실”

2025-03-27

우려되는 한·미 동맹 재조정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쏘아붙인 목소리가 기억에 생생하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백악관으로 불러 여섯 차례나 이 말을 한 뒤, 사실상 그를 쫓아내는 듯한 장면은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을 극도로 긴장시켰다. 트럼프는 취임 후 두달여 동안 기존의 이념이나 체제, 가치를 무시하고 국가보다 개인, 동맹보다 사적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한·미 관계, 특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예고하고 있다.

동맹 관계 흔들기 나선 트럼프

중국 견제에 동참 요구 가능성

주한미군 역할 조정 나설 수도

상황별 플랜B 수립해 대응해야

“대만 문제에 주한미군 투입할 수도”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인 한국을 향해서도 기존 질서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국 견제에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할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서 동맹 전략을 포함한 국방 전략 검토를 맡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밝힌 입장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대중 강경파인 콜비는 트럼프 1기 국방부 전략 및 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로 2018년 미 국방전략서 작성을 주도했다. 그는 2021년 발간한 본인의 저서 『거부전략: 강대국 분쟁 시대 미국의 국방』에서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안보 위협을 중국이라고 규정했다. 콜비는 지난 4일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도 “베이징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미국을 대체해 세계 주도권을 쟁취하는 것”이라며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대만이 방위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도록 압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콜비는 한국을 대중 견제를 위한 핵심 국가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거부전략』에서도 한국, 호주 등이 참여하는 반중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한국을 최우선 동반자로 꼽지 않았다. 한국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중 견제에 나선다면 환영하지만, 구태여 공을 많이 들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오히려 한국에 더 부담될 수 있다. 대중 견제라는 미국의 최우선 목표에 한국의 역할이 제한된다면 한·미 동맹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미국 입장에선 주한 미군의 규모 축소나 이전 배치, 혹은 철수까지도 검토할 것이다. 미국 내에선 이미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에 있는 미군을 한반도 밖의 비상 상황, 즉 중국과 관련된 상황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오리아나 스카일라 마스트로 스탠퍼드 프리먼스폴리 국제학연구소 연구원)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6·25 전쟁 직전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이 떠오른다.

동시에 평택의 주한 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도 자칫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파고가 몰아칠 때마다 캠프 험프리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이 정도로 비용을 들여 기지를 건설했으니 방위비 분담금을 깎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국은 미국과 협의해 서울 용산 등에 산재해 있던 주한 미군이 최상의 여건에서 생활하도록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주둔 미 지상군 기지를 건설했다. 여의도의 3배가량인 14.677㎢의 면적에 평시 4만3000명, 최대 8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첨단 시설을 갖춘 기지다. 2017년 11월 트럼프가 방한했을 때 험프리스의 시설을 둘러보고 만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대규모 지상군을 운용하는 전쟁을 지양하고, 동맹국 방어를 위해 해당 국가가 지상 작전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실과 달리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한 지상군의 역할이나 주둔지의 중요성에 무게를 덜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캠프 험프리스를 북한이 아닌 중국 견제용으로 사용하려 ‘용도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리프먼 갭’과 미국의 대안

특히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캠프 험프리스에 미사일 배치에 나설 수도 있다. 트럼프가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 1월 27일 서명한 ‘통합 방공 및 미사일 방어’(Integrated Air & Missile Defense, IAMD)를 구축하기 위한 행정 명령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행정 명령의 목적은 미 본토 방어가 핵심이지만 한·미·일이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를 구축해 결국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속내가 드러난다. 미국이 캠프 험프리스에 미사일 배치를 시도한다면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때보다 더 크게 반발할 것이고 국내 여론도 또 양분될 게 뻔하다.

트럼프가 선거 운동 기간 한국을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고 밝혔듯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 역시 발등의 불이다. 콜비는 지난 4일 인사청문회에서 ‘리프먼 갭’(Lippmann Gap)을 화두로 던졌다. 이는 월터 리프먼이라는 미국 정치철학자가 제시한 개념으로, 국가의 외교 및 군사 목표와 이를 이행하는 자원 간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콜비는 미국이 다차원 분쟁에 직면해 있지만 제대로 대비할 능력이 없다며 리프먼 갭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동맹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향해 유럽의 안보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국민 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에 사용토록 요구한 게 대표적이다.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의 대폭 감축을 시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전작권 한국에 넘기려 할 수도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향해서도 유사한 주문을 하며 한·미 동맹을 조정하려 들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통해 한반도 방어의 책임을 한국이 ‘감당’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콜비도 청문회에서 전작권 전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 비전은 한국과 같은 역량 있고 의지가 있는 동맹국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1기 때인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값비싸고 도발적인 전쟁 게임”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후 미국은 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기존에 없던 ‘작전 지원’과 ‘대비 태세’ 항목을 만들어 방위비 대거 증액을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작전 지원은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이고, 대비 태세는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연합훈련 비용 등이다. 이 두 항목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해 한·미가 발전시켜온 확장 억제를 위한 핵심 축이다. 한·미는 지난해 8월과 지난 20일 끝난 연합 훈련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상정해 훈련했다. 미국의 전략 자산도 이전과는 달리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조합해 북한의 핵에 대응하는 ‘핵 재래식 통합작전’(CNI) 혹은 ‘맞춤형 확장 억제’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이다. 따라서 한·미 연합 훈련과 전략 자산 전개가 중단된다면 확장 억제는 훼손되고 한국의 안보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대중 견제 요구, 일본과 공동 대응을

우리의 선택지엔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동안 주한미군의 역할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유사시 기존의 연합 작전 계획에 포함된 미국의 대규모 지상군 지원 전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미 해·공군의 지원 전력도 마찬가지다. 한미 연합 작전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한국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각오와 준비가 절실하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군의 대규모 재래식 공격에 단독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작전 계획을 다시 짜고 전력을 구축하는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방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적극적인 동참 요구에도 대응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한·중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게 한국의 입장이다. 그런 만큼 미국의 주문에 호응하더라도 공개적인 행동이나 목소리를 내선 안 된다. 콜비가 청문회에서 밝힌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대만을 신속하게 점령하려는 시도’에 대해 한국은 일본과 함께 ‘은밀히’ 미국과 협의하는 방식이다. 비상한 시국이다. 안보에 대한 도전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민감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불편해서 피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몰려온다. 한국 스스로 예상 문제를 만들어 답을 적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