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고 없어도 목소리가 남는데, 사고 난 제주항공 보잉기는 어쩌라고 마지막 4분 기록이 날아간 것인지, 날린 것인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소설가 보르헤스의 ‘탱고’에 대한 4개의 강연 음성은 세계 문학사의 큰 보물이다. 37년 만에, 2002년 발굴된 이 테이프엔 보르헤스가 얼마나 탱고를 사랑했는지,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며 국립도서관장을 지내면서 찾아다닌 단골 밀롱가, “죽은 자들은 탱고 속에 살고 있더라”는 작가의 감상, 밀롱가에서 만난 오래된 별들의 회전춤을 유려하고 차근한 말들로 풀어내고 있다.
삶이 외롭고 쓸쓸할 때, 아르헨티나에서 배웠던 탱고의 기억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고작 며칠 동안이지만 탱고학교에 등록한 적도 있는데, 이제 누가 있어 손과 허리를 붙잡고 탱고를 출까.
보르헤스는 탱고를 ‘춤추는 슬픈 생각’이라고 하더군. ‘느리고 우울하며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탱고. 춤을 추기 앞서 서러운 곡조가 깔린다. “반도네온은 풀무질로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무대에서 쩌렁쩌렁 울려. 길 건너 여관집에서 동네 건달들이 탱고를 추네”, 구슬픈 탱고 춤곡. 이런 탱고풍과 감정을 ‘카랑칸풍카’라 하는데, 보르헤스가 친구 아베야네다에 무슨 뜻이냐 묻자 “응, 그건 떠들며 얘기하고 가로등을 부숴 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네”. 슬픔과 분노가 함께 섞인 춤 탱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리의 군중도 어쩌면 장엄한 춤이자 탱고 같아. 슬픔과 분노로 카랑칸풍카를 노래하며 춤춘다. 서로를 붙잡고 어루만지며 휙휙 쉭쉭,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