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 화가의 눈, 과학자의 두뇌를 지닌 전방위적 천재였다. 하지만 그도 음악에 관해서는 애쓰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모종의 경외심으로 평생 음악을 가까이했다. 학생 시절에는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청장년기에는 독일어 음악극을 성공시키겠다는 야심으로 대본을 여러 편 썼다. 1791년 바이마르 극장의 책임자가 된 이후 그가 가장 자주 무대에 올린 작곡가는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와 함께 괴테가 가장 사랑한 음악가는 바흐였다. 당시 바흐가 철저히 잊혔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괴테에겐 ‘바흐 전문가’ 첼터가 있었다. 멘델스존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가업인 건축업으로 ‘투잡’을 뛰어가며 합창단을 키우고 옛 걸작을 연주했다. 이 열정적인 ‘벽돌공 작곡가’ 덕에 괴테 또한 바흐에게 점점 매료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아직 음반이 없던 시절, 베를린에 사는 첼터가 바이마르 괴테 집에서 연주해 주는 것은 1년에 잘해야 한두 번이었다. 다행히 바이마르 근처의 온천 마을 바트 베르카에 바흐 제자의 제자인 쉬츠(사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온천 감독관으로 일하면서 바흐를 연주했다. 괴테의 일기장에는 ‘온천 감독관이 찾아와서 바흐를 연주했다’는 메모가 100번도 넘게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천 감독관의 집에 불이 나서 피아노와 귀중한 바흐의 악보가 다 타버렸다. 괴테는 바흐의 악보를 구해서 쉬츠에게 선물했다. “자그마한 데서도 요긴한 것이 자란다네. 해님에게 고개 돌리는 가녀린 줄기도 그와 같아, 공허한 껍데기일랑 겨처럼 떨어져 나가고 가치로운 정신의 알곡만 남아 추수를 기다리리라.” 그 표지에는 헌시가 적혀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의 명맥을 이어가느라 기꺼이 벽돌공이 되고 온천 감독을 했던 사람들. 그들이 괴테에게 바흐를 들려주었다. 시와 음악이 그렇게 만나 망각을 넘어섰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