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그림자 연극’
언젠가 다뤄볼 계획은 있었지만 이 시점에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비극이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얘기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2021년에 사망한 프랑스 작가이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76세,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오픈을 석 달 앞둔 시점이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그의 죽음은 세계적인 도박사와의 내기가 걸려있는 예술작품의 일환이기도 했다.
종이로 해골 등 만들어 벽면 투사
1980년대 중반 명성 안긴 시리즈
유대인 트라우마 68 저항 결합
사적 기억물 통해 죽음 다뤄
헌 옷더미 50t 낙하시킨 ‘사람들’
집단적 죽음 애도하는 방법
자신의 죽음을 예술작품으로 베팅
이야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볼탕스키는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지인의 소개로 호주의 유명 도박사이자 미술 컬렉터인 데이비드 월시를 만났다. 예술가와 컬렉터가 만났으니 작품 구매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볼탕스키는 월시에게 독특한 제안을 한다. 자신의 남은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작품으로 구매하라는 것. 작품의 제목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삶(Life of C. B.)’, 제작연도는 계약 시점부터 작가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작품의 가격은 두 사람이 비밀리에 합의한 후, 8년 완납을 기준으로 매월 할부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단, 할부금의 지급은 볼탕스키의 사망 시 종료된다. 8년이 되기 전에 작가가 사망하면 컬렉터가 작품을 정가보다 싸게 구입하는 셈이 된다. 8년 이상 살면, 작가는 매달 추가금을 받게 된다.
월시는 내기의 형태를 띤 이 제작의뢰 구매 계약에 합의하고 그 이후로 10년 이상 할부금을 지급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둘 다 술이 꽤 취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 만난 사이에 언어도 통하지 않아 주로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했다고 하는데 죽이 잘 맞은 모양이다. 볼탕스키는 자신은 막사는 스타일이라 당신이 이길 것이라고, 월시는 기왕이면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앞에서 죽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고약한 농담을 나누었다.
그 이후로 볼탕스키의 스튜디오에는 24시간 가동되는 세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호주로 실시간 송출했다. 월시는 10년 이상 할부금을 지급했다. 작품 가격이 완납되는 2017년 기준으로 4년이나 더 살았기 때문에, 돈 내기에서는 볼탕스키가 이긴 셈이다. 2010년에서 2021년까지 11년간의 촬영 기록은 현재 호주에 있는 월시 소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의 제목에는 ‘삶’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사실상 죽음을 전제로 성립되는 개념 미술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가능했던 것은 볼탕스키가 ‘죽음’을 평생의 테마로 삼은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25세에 만든 작품은 자신이 불미의 사고로 사망한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후 사고와 관련된 사진과 신문기사 등의 기록물을 모아둔 스크랩북의 형태를 띠었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농담처럼 다룬 이 작가는 사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공감과 애도를 끌어내는 작품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볼탕스키는 194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이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머니와 이혼을 가장한 후 18개월간 마룻바닥 아래에 마련된 지하 공간에 숨어 살았다. 볼탕스키는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주변의 유대인들은 모두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유가족이었다. 어머니는 특히 불안이 심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년간 가족 구성원 누구도 혼자서는 외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을 타고 난 데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서인지 볼탕스키는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1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볼탕스키는 20대 중반부터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 프랑스 68운동의 영향 하에서 개념주의적 성격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일상적인 물건들을 통해 관람자 개개인의 사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평범한 개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그는 한 개인의 수집품과 기록물, 빛바랜 사진 등을 즐겨 사용했다. 너무나 사소해서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런 재료들은 죽음에 대한 그의 소박한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죽음이란 참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유일한 존재이며 저마다의 작은 역사와 지식, 그리고 기억들을 지니고 있지만, 한순간에 보잘것없고 불쾌한 물체가 되어 버립니다.”
볼탕스키라는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림자를 이용한 설치 작품을 발표한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이 시리즈 작품이 한 점 소장되어 있다. 제목은 ‘그림자 연극’. 98년에 볼탕스키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구입한 것으로, 종이로 만든 사람의 얼굴·해골·가면 등의 형상을 철사에 매달아 전시장 벽면에 그림자로 투사하는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선풍기가 설치되어 가느다란 철사에 매달린 형상들을 흔든다. 어두운 전시장 벽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은 희미한 빛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 삶의 나약함과 덧없음, 그리고 이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죽음의 편재성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 첫 전시서 ‘위안부’ 설치작품도
한편 볼탕스키는 집단적인, 사회적인 죽음에 각별히 관심이 있었다. 이런 주제를 다룬 그의 작품들은 유대인이라는 작가의 정체성 때문에 홀로코스트를 다룬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집단적 죽음이라는 사건을, 그 속에서 무명으로 희생된 개인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 조망해 보려는 성격이 강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서는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기념하여 ‘위안부’라는 설치 작품을 만들어 기증했는데, 역사 속에서 희생된 평범한 개인들을 추모하는 데 주력한 작품이었다.
볼탕스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2010년에 파리의 그랑 팔레에 설치된 ‘사람들’이다. 그랑 팔레의 거대한 공간 속에 50t에 이르는 헌 옷더미가 산처럼 높이 쌓여 있다. 커다란 크레인이 마치 인형 뽑기 기계의 집게처럼 옷더미 하나를 집어서 천장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린다. 크레인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움직임은 우리 삶을 관장하는 운명처럼 무심하고 무작위적이다. 이 압도적인 광경에 1만5000여 명의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한 사운드가 더해진다. 삶의 증거물이자 흔적으로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이 사운드 작품은 ‘심장의 아카이브’라는 제목으로 현재도 일본 데시마 섬에 설치된 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헌 옷일까? 볼탕스키는 헌 옷을 즐겨 사용했다. 누군가가 입었던 옷은 그 사람의 대체물로서 가장 친밀한 느낌을 주면서도 부재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헌 옷의 무더기로 이루어진 작품 ‘사람들’은 우리가 대형 참사라고 부르는 어떤 집단적인 죽음을 연상시키며, 그 압도적인 규모로 관람자를 망연하게 만든다.
한순간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은 개개인이 이런저런 사유로 맞이하는 죽음과는 다른 차원의 비극이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처럼, 죽음의 시간에도 마땅히 각자의 사연과 맥락, 나름의 필연성이 있기를 기대한다. 탄생을 위한 축하만큼 소멸에 대한 애도의 시간도 보장되기를 바란다. 이런 기대를 모두 배반하는 집단적인 죽음은 인간의 개별성을 한순간에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허망하고 무참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건의 우연성은 잔인함을 더할 뿐이다. “누구나 죽는다”라는 보편적인 명제와 “내가 죽는다”는 개별적이고도 특수한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괴리가 한 번 더 뒤틀린다.
비극의 기억 너무 빨리 사라져
무안에서 항공기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연히 그 시간에 같은 항공기를 탄 하나의 집단으로서, 그리고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를 지닌 개별적인 존재들로서 그들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이 거대한 비극은 공공의 관심과 기억에서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 이는 물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일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비상 체제가 끊임없이 연장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