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온라인을 달군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릴레이 기부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이 운동은 미국 루게릭병협회(ALS)가 이 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했다. 얼음물을 뒤집어 쓴 영상을 올리고, 3명을 지목하면 24시간 이내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방식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의 기부 문화도 소셜미디어 덕분에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 촉구 집회 때 벌어진 ‘선결제 릴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영남 산불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 마늘밭, 사과 농장, 송이밭이 잿더미가 됐다. 실의에 찬 이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며 몰리는 온정과 선의에 감동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부를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국, 가수 아이유 등 연예인들도 줄줄이 동참했다. 한걸음에 피해 지역으로 달려간 자원봉사자들도 많다. 이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그런데 산불 사태를 고리로 때아닌 진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민들이 산불 피해 지역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항의했다고 기부 취소 인증을 하는가 하면, 가수 이승환씨가 산불이 한창인 지난 27일 탄핵 촉구 집회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비판하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렇지 않아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갈등이 극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슬픔을 함께할 수 없다면 적어도 찬물은 끼얹진 말아야 한다.
기부 행위는 칭찬받아야 한다. 돈이 많아도 남을 위해 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 돈을 적게 냈다고, 혹은 내지 않았다고 눈을 흘길 일은 아니다. 지금의 기부 행렬은 ‘손목이 비틀려 억지로 하던’ 과거 기부 문화에 머물렀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모습들이다. 작은 힘이라도 모으려는 시민들의 기부 행렬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본다. 산불 이재민들에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은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