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앤에프가 3000억원 규모의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며, 재무 부담에 막혀 있던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장기 적자와 부채로 지연됐던 투자에 숨통이 트이면서 국내외 생산기지 확보와 수주 확대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전날 총 3000억원 규모의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엘앤에프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시설투자(500억원), 운영(500억원), 타법인 증권 취득(2000억원) 등 용도로 활용한다. 이 중 일부는 오는 7~8월 이사회 승인을 거쳐 설립 예정인 LFP 양극재 별도 법인에 투입된다. 그 외 기존 NCM 양극재 사업 운영자금 및 전략적 투자 재원으로도 쓰인다.
이번에 발행되는 분리형 BW는 채권과 신주인수권이 분리돼 각각 독립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구조다. 투자자는 이자 수익을 기대하거나 신주인수권을 통해 주가 상승 차익을 노리는 등 선택적으로 투자 전략을 구성할 수 있다. 발행 방식은 '주주우선 배정 후 일반공모' 구조로, 실권주 발생 시 일반 청약을 거쳐 잔여 물량은 인수단이 전액 인수하는 잔액인수 방식이 적용된다. 표면이자율은 1%, 만기이자율은 3%다.
엘앤에프는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LFP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국내 셀 업체들의 LFP 진출이 잇따르는 가운데 LFP 양산을 공식화한 국내 양극재 업체는 현재까지 엘앤에프가 유일하다.
엘앤에프는 2026년 말 양산을 목표로 구지3공장에서 시험 라인을 운영 중이며, 주요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양산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고객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와 중저가형 전기차 및 ESS용 LFP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으며, 업계에서는 해당 고객사를 삼성SDI로 추정하고 있다.
북미 시장 대응도 병행 중이다. 엘앤에프는 미국 현지 파트너사인 미트라켐의 지분 약 145억원어치를 인수해 LFP 양극재 현지 생산 거점 마련에 착수했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업계에서는 엘앤에프의 실적 악화와 부채 증가로 인해 LFP 사업 확대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엘앤에프는 2023년 2223억원, 2024년 558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402억원의 적자를 내며 3년 연속 적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부채비율도 2023년 201.9%에서 2024년 279.1%, 올해 1분기에는 356.9%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오는 7월에는 기존 발행한 6회차 전환사채(CB)의 풋옵션 행사가 예정돼 있다. 상환 자금 약 1000억원이 필요하며, 이는 지난해 12월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 CB다. 하지만 이후 주가가 하락하며, 사채권자들의 조기상환 청구를 피하지 못했다.
BW와 CB가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단기 유동성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BW는 회계상 부채로 분류되기 때문에 조달 자체는 현금 흐름에는 도움이 되지만 부채비율 상승 등 재무건전성 지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고강도 베팅의 중심에는 허제홍 이사회 의장이 있다. GS가(家) 4세이자 엘앤에프·새로닉스 최대주주인 허 의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2년간의 부진은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며 실적 반등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실제 허 의장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10개월간 약 1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경영에 나섰다. 고조된 재무 불안 속에서 단행된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 신뢰를 주기 위한 행보였지만, 결국 실적 반등이 지연되자 회사는 대규모 자금 조달이라는 구조적 선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LFP 투자로 결실을 거둬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기준 부채비율을 376%, 이자보상배율을 0.3%로 추산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해당 연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분리형 BW 발행이 구주주 지분 희석 우려를 낳는 가운데, 엘앤에프는 실적 반등과 추가 수주 확보를 통해 주가와 재무 건전성 모두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BW 발행 이후에도 실적 성장 및 추가 수주 활동 등 적극적인 주가 부양 활동을 통해 재무 구조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