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연합, 지난 12일 3차 정세토론회 개최…극우화 역사‧문제점 짚고 대응방안 모색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연합)은 지난 1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5층 교육장에서 ‘보건의료‧건강권 운동 3차 정세토론회’를 개최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우석균 정책자문 위원장이 우리나라 극우 세력의 출현과 성장 배경, 지정학정 정세를 짚으며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해 다뤘다.
우석균 위원장은 지난 2008년 공황으로 시작된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장기화 되고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가중된 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이 극우세력을 등장시켰다고 짚었다. 최근 한 달 사이 ‘탄핵 반대 집회’로 거론되는 우리나라 극우세력의 결집도 ‘일부의 일탈’로 보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닥치면 정부는 돈이 없다며 공공서비스 영역을 긴축하거나 민영화시키고, 복지재정을 삭감하고, 부자는 감세해 주는 정책을 펴는 ‘재정긴축과 민영화’라는 오래된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원칙)을 천명하며 국가나 나서서 기업을 지원하는 노골적인 신국가주의가 나타난다”며 “경제위기로 이른바 평생직장과 중산층 신화가 무너지고 대규모의 계층하락, 그에 따른 절망을 배양지로 삼아 중간층에서 극우파가 대중운동으로 성장한다. 한국의 극우층이 빈곤한 노인, 가난한 지역의 종교세력, 영남의 몰락한 공업지역에서 탄생하는 게 우연이 아닌 것”이라고 짚었다.
또 우 위원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세계적인 전쟁위기가 극우파가 세를 키우기 좋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적 갈등 속에서 민주주의 같은 허약한 제도로는 국가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민족, 빨갱이, 반공 등 이데올로기적 입지를 다질 수 있다”며 “윤석열 일당이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언급하며 전쟁, 경제위기 등 자본주의의 객관적 위기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 극우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극우세력의 부상에 대응하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파업과 계급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 위원장은 “극우세력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고, 자본가들은 이에 동조하고 지지해 온 세력”이라며 “87년 6월 항쟁이 성공한 것은, 학생 뿐 아니라 그 전의 부마항쟁과 이후 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이 탄생하고 지금 누리는 최소한 일반 민주주의 제도가 있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공동대표는 극우세력을 성장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우리나라에서 극우세력을 주변화하기 위해 보건의료인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민주주의는 참여나 대표성, 거버넌스 등에서 한계가 있고, 사회‧경제적 하위계층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배제되고 상위계층만을 위한 과두 정치의 일상화, 소위 ‘전문가’ 중심의 밀실 정치 등 민주주의의 평등 역학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극우세력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성장한다”며 “주류 우파나 좌파 정당 모두 자기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이에 대한 항의로 극우 세력을 지지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 윤석열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공동대표는 “교육, 의료, 주택, 복지 등 사회경제적 문제보다 이민, 범죄, 테러, 부패 등 ‘사회문화 이슈’에 집중하며 유튜브 같은 SNS를 통해 극우세력이 선전과 선동을 쉽게 할 수 있고 집단 정체성을 양성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극우의 세력 확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경제적 불만 소통을 위한 정치적 경로 발굴 ▲평범한 다수의 삶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재정‧통화‧산업 등 모든 영역의 ‘긴축정책’ 반대 투쟁 ▲극우세력의 의견을 철저히 음지화하는 것 등을 제안했다.
이 공동대표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양당정치 체제를 넘어 진보적 정치세력을 키우고, 경제와 정치의 연결고리를 복원해 모든 재정‧통화‧산업 정책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도록 해야한다”면서 “의료민영화, 의료공공성 확충, 사회복지 강화 요구 등 보건의료영역은 이러한 전략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보건연합 주요 구성원 대부분이 40~60대인데, 집회나 시위를 단순히 하나의 행동으로 보지 말고 계속해서 자신을 업데이트하면서, 회원들이 다양한 실천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그런 흐름을 만들어가지 못하면 우리 단체는 과거의 역사와 모순을 안고 사라질 수 있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이 운동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정체성을 단체가 잘 체화해 나가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보건의료 근본적 문제 고민하고 토론하며
공부하고 조직화하고 시위하며 바꿔내야
발제 후 이어진 자유발언에서는 한 달 여간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집회와 시민연대, 그리고 부문운동의 확장을 위한 의견과 문제제기가 나왔다.
행동하는간호사회(이하 행간) 이향춘 운영위원은 “발제를 들으면서 극우의 세력확장이 우려스러운 한편, 우리 내부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광화문과 한남동에서 의료부스를 지키면서 의료민영화와 그 투쟁의 역사를 우리가 잘 아는 만큼, 이를 계속 추진하기 위해 조직력 확대를 위해 체계적 거버넌스와 내용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김형성 집행위원장은 “탄핵과 당장에 이어질 대선 국면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문제 비판을 자제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우리의 요구사항이 뚜렷해야 하고 근본적인 문제도 지적해야 한다”며 “현상적으로 2030 여성들은 대중운동에 참여하지만 반대로 2030 남성들은 나오지 않고, 이들이 극우세력의 기반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과 이해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 송미옥 회원은 “의대 2천명 증원이라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 반대해 국민들이 의사협회를 지지할만한데, 그렇지 못한 건 의사협회는 이미 극우화 됐고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라며 보건의료계 내의 극우화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면서 “건강보험을 민간보험사가 대체하려는 민영화 시도가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고, 현장에서도 공보험과 사보험의 경계가 무너져 있는 등 건강보험 시스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고, 지체된 투쟁을 재조직화, 재정책화, 재정비해서 다음에 누가 집권하든 이 운동을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대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12‧3 비상계엄 직후 우리 과 학생은 물론 교수들까지도 그런 일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다. 무력감이 느껴지고 탄핵인용까지 가는 과정도 너무 지지부진하다”면서도 “윤석열이 파면되도 극우화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쟁하고 싶고,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싶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해 지치지 않고 광장에 나왔던 선배님들의 경험을 듣고 싶고 많이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건약 신입회원으로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소심한 저항이긴 하지만, 계엄을 옹호하는 약국 취업을 보이콧 하고, 내부의 혐오발언에 당당히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가,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치 김용진 전 대표는 “광장에 나온 보건의료학생들을 존경한다. 혼자서는 오래가지 못하고 버티지 못한다. 대학 때 87학생운동 이후 지금까지 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건치라는 조직 속에서 변절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연구회와 동호회를 조직하고 연대하면서 왔기 때문”이라며 “인의협, 건치, 건약, 행간 등 단체마다 준비된 선배들이 있고, 조직화 하면서 좋은 세상 만들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자”고 당부했다.
보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극우는 긴축과 민영화를 통한 불평등과 차별에서 탄생한다”며 “불평등이 계속되는 한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노동과 건강 문제 역시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므로 이를 연결시키고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같이 공부하고 광장에서 집회하자”고 제안했다.
건강과대안 변혜진 연구위원도 “지금 이 시기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우파가 세력화하고 성장하듯이 우리도, 나이든 회원들도 자주 나와서 섞이고 배우며 진화해야 한다”면서 “파시스트는 중산층이 동조하고 전문들이 지지하면서 커진다. 현재 의협과 간협의 극우화 문제를 낱낱이 드러내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우리 선배 세대는 역사와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주경야독하며 투쟁하는 것만이 극우에 맞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인의협 최준서 학생회원은 “문재인 정권 때 청소년 인권조례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때만해도 시위에 2‧30명 나오면 많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유례없는 연대의 확장을 보면서 시민의 힘을 느꼈다”면서 “극우세력에 맞서 장애인‧여성‧성소수자와의 연대는 물론, 보건의료단체로서 사이버상의 트랜스젠더 불링(괴롭힘)과 이들에 대한 의학적 오해 등을 이야기하면서 연대를 확장하고 민영화 투쟁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인의협 나백주 회원은 “형식화된 민주주의에서 참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건강보험 측면에서 공급자자‧자본가 중심의 정책결정 구조를 깨고, 노동자와 취약계층의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헙법, 정책 협의체 내용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지 논의할 수 있는 ‘보건의료대개혁시민협의회’ 같은 게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보건연합은 이날 토론회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보건의료 청년 학생 일일학교'를 열고 ▲의료대란 ▲노동자 건강 ▲간호노동 문제 등을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