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반대집회 곳곳서 반중구호
“중국인들이 선거 개입” 주장
카페서 중국인 손님 쫓아내기도
“탄핵 찬성 집회에도 대거 참여”
SNS·정치권 가짜뉴스 기름 부어
서울 찾은 中 관광객들 불쾌감
업계, 정국 불안에 유커 감소 우려
“韓 외교정책 위상 깎아 먹어” 지적
“중국인 꺼져라!”, “차이나 아웃!”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의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선 참가자들은 손에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 등을 손에 들고 이렇게 반중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집회 현장의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3일 한남동 인근의 한 카페에서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매장 안에 들어오자, 매장을 찾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너 중국인이지”, “여기 왜 왔어?”라고 소리치며 쫓아내는 소동도 벌어졌다. 놀란 중국인들은 매장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탄핵 반대 진영을 중심으로 중국을 향한 무분별한 적대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격화하고 있다. 이들 진영에선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반중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일부 관광객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최근 한남동 집회 현장에선 ‘애국반공’,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구호와 함께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관저와 가까운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2번 출구 앞에는 이스라엘 국기를 판매하는 노점상까지 등장했다. 상인들은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상당수는 반중 정서를 숨기지 않고 있다. 반중을 외치는 이유에 대해선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집회에 참가한 배모(61)씨는 “중국인들이 집회에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이 중국화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차이나 아웃’ 피켓을 들고 있던 윤모(66)씨는 “중국은 5000년 역사에서 한국에 한 번도 도움된 적이 없다”며 “선거 때도 중국인이 개입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참가자 전모(65)씨는 “비상계엄은 종북주사파 세력을 척결하고 나라를 건강하게 ‘리셋’할 기회였다”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정치권의 발언으로 증폭되고 있다. SNS와 유튜브에선 중국인들의 집회 참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주장마저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갔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은 2일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에서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고, 유상범 의원도 5일 SNS에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며 반중 정서를 부추겼다.
반중 정서가 확산하자 서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인근의 중앙우체국 앞에선 12일 ‘중국 공산당 규탄’ 집회마저 열렸다. ‘중국 공산당 규탄’ 깃발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중국인 관광객 후아위잉(25)씨는 “번화가에서 이런 시위가 있다는 게 창피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정치가 어디로 가는지가 국가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라며 “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깃발을 들고 나와 정치적 갈등의 장으로 끌고 오는 것은 한국의 외교 정책 위상을 깎아먹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관광업계는 반중 정서 확산이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중국인 방한 관광객은 430만명으로, 전체 외래관광객(1500만명)의 28.5%를 차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가장 많은 관광객이 중국에서 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치 혼란 속 한국 여행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여행업계는 “정국 불안 속 한국행 항공편 예약이 10∼12% 감소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 찬성 참가자가 중국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정치인들까지 동조하는 건 문제”라며 “반중 정서를 일으켜 사람들을 결집하려는 행위는 외교적 차원에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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