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라지만 자신의 좁은 집이었다. 교인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녀 둘. 그게 전부였다. 1990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류영모 목사는 결국 교인 1만6000명의 한소망교회(일산)를 일구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쓰리맨”이라고 부른다. 맨손과 맨몸으로 맨땅에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70세 정년을 맞이한 류 목사는 피땀으로 일군 교회를 후임 목사에게 훌훌 승계했다. 사람들은 “섭섭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의 사위도 목사다. 2019년 기준 국내에서 자식에게 세습한 교회는 285개나 된다. 류 목사는 고개를 저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보라. 답은 금방 나온다.”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은지구의 사무실에서 류영모(71, 전 한교총 대표회장) 목사를 만났다. 그에게 ‘교회와 시국’을 물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설립자가 주인이 아니다. 후임이 와도 주인이 아니다. 교인도 주인이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세우라고 해서 세웠고, 섬기라고 해서 섬겼다. 이제 물러나라고 하니 물러날 뿐이다. 내가 세웠다고 해서 교회가 내 소유는 아니지 않나.”
큰 교회도 세습한 사례들이 꽤 있다. 이유가 뭔가.
“많은 한국교회가 담임목사가 되는 걸 권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권세가 아니라 섬김이다. 한국에 개신교 교단이 100개가 넘는다. 200개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세습금지법이 있는 교단은 예장통합과 감리교, 둘 뿐이다.”
34년간 일군 교회를 승계했다. 후임 목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아들 같은 후임이 안쓰럽다. 이게 얼마나 큰 짐인가.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가 당분간 끌어주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답이 왔다. ‘내가 끌면 된다.’ 제가 뒤에 숨어서 밀어주면 어떨까요. 또 답이 왔다. ‘내가 뒤에 있다.’ 다시 기도했다. 제가 곁에서 손을 잡고 가면 어떨까요. ‘내가 곁에 있다. 염려 마라. 너는 너 갈 길을 가라.’”류 목사는 담임목사직 승계 행사에서 이 기도담을 교인들에게 직접 공개했다.
교회를 일구고 키우는 걸 자신의 기업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도 있다.
“그건 하나님을 섬긴 게 아니고 장사를 한 거다. 교회 사역을 일종의 투자라고 보는 거다.”
류영모 목사는 2021년 말에 개신교 대표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양쪽 진영의 사람들을 두루 만났다. “목사는 좌나 우, 한쪽 진영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안 된다”며 철저하게 열린 자세를 취했다.
“목사는 영적 지도자가 돼야 한다. 한쪽 진영에 발을 담근 채 정치 평론을 하면 곤란하다. 그리스도의 관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 그게 기독교의 예언자적 사명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정치평론을 하려는 게 아니다. 3ㆍ1운동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헤쳐온 우리 민족의 정당한 사회적 가치를 지켜달라고 애원하는 거다.”
비상계엄 사태로 무척 혼란스럽다.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개헌을 통해 정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안 맞다. 몸에 안 맞는 옷을 너무 오래 입었다. 이원집정제로 가야 한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를 책임지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는 경제ㆍ교육ㆍ사회ㆍ문화 등 내치를 맡으면 된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좋은 기회. 그 앞에서 국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셈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칼은 칼집에 있어야 두렵고 떨리는 법이다. 그런데 여도 야도 칼을 빼서 마구 칼춤을 추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칼춤이고, 180석 거대 야당의 무차별 탄핵이 칼춤이다. 200년 민주주의 역사에서 미국은 대통령 탄핵이 진행된 적이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적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벌써 세 번째 탄핵이 진행 중이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이 말끝에 류 목사는 먼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가령 윤석열 정부가 실패했다고 하자. 그게 보수의 실패는 아니지 않나. 국민의힘의 실패는 아니지 않나. 지금은 보수가 자신을 돌이켜 볼 때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권을 잡아놓고 무엇을 안 했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했는지 살펴볼 때다. 그런데 안타깝다. 실패한 정권을 끌어안고 같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야당은 어찌 보나.
“야당의 대표가 곧 민주당은 아니다. 야당의 대표가 곧 진보는 아니다. 그 한 사람을 보호하는 게 민주당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진보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 야당은 이걸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질 거다. 그건 아니지 않나.”
마지막으로 류 목사는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상처촌이 돼 있다. 그래서 한풀이 정치를 한다. 우리 편이 상대를 짓밟을 때 내 상처가 위로를 받는다. 그걸 통해 진영이 더욱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회복 탄력성이다. 역사를 돌아보라. 우리 국민은 위기 때 더욱 강했다. 고난을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며 “그러니 절망하지 말자. 우리 몸에 맞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