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에서 노화와 더불어 누구나 본의 아니게 장애인이 된다. 신체적 장애는 없을지라도 마음의 상처로 인해 정신적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나답게 주도적으로 먼저 나를 사랑하자. 그런 후 자기 결정권으로 내 인생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나답게 살기 위해서 이 공간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그녀는 서른일곱 살이며 유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다. 유진이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직장의 어린 여자와 살림을 차려 나가서 엄마와 단둘이만 집에 남겨졌다. 부자였던 어머니는 떠나간 남편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귀한 딸을 애지중지 키웠다.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피아노 연주도 곧잘 하고 노래 솜씨도 뛰어났다. 외국어도 능했고, 글솜씨도 있어서 작가로 등단도 했다.
그녀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였다. 그 무렵에 잠자리가 편하지 않고 악몽을 꾸었던 아버지는 유진에게 여러 번 안부의 전화를 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쌓였던 그녀는 매몰차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우리는 너무 잘 있으니, 절대 연락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 년 동안 슬픔과 노여움 그리고 배고픔의 삼중고를 겪었다. 혼자서 어머니를 잃은 서러움과 외로움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 와중에 의식불명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발견된 그녀는 뇌병변장애인이 되었다. 뇌의 변화로 생긴 후유증이 장애를 유발한 것이다. 사지의 기능 마비로 인해 일상생활과 가사, 이동 및 외출 활동 모두에 곤란이 발생하며 인지, 기억, 언어, 정서 등 정신적 어려움까지를 수반하고 있다. 편마비 운동장애, 언어장애로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다행히 국가 정책의 배려로 그녀에게 알맞은 복지 시책의 혜택을 받고 있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주선으로 매정하게 떠나갔던 그녀의 아버지가 후견인이 되었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화를 해보니 영어도 좀 알고, 제법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언어도 구사한다. 예쁘게 웃으며 말하다가 갑자기 자기 아버지에 대한 욕설을 퍼붓는다. 분노가 가슴 가득하게 차 있다. 유진 양은 욕을 찰지게 잘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떠나간 아버지에게 퍼붓던 저주의 언어들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계모에 대한 욕을 내뱉는다. 아버지를 빼앗아 가고, 한집에 살아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계모의 냉대에 대한 원망이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모양이다.
자신의 아이에게는 “사랑해”를 연발하면서, 본처의 딸에 대해서는 존재 그 자체를 무시하는 계모의 언행에 유진의 마음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사랑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유진 양이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도록 하려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다. 가족도 아니다. 보호자도 아니다. 다만 아주 가끔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내 힘이 닿는 만큼 속삭여 주고 싶다.
유진 양에게 반복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랑한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그 외에 그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지지해 주고 싶다. 이 세상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유진은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까? 유진이가 유진이답게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심어주고 싶다.
‘너는 네 운명의 주인이다. 너는 너를 믿는다. 너는 장애물을 보면 미소 짓는다. 너는 네 안에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너는 어려운 모든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뛰어넘는다. 유진아! 너는 늘 정신을 집중하고 너의 모든 것을 거기에 바친다. 너의 결심은 강력하다. 너는 네 일에 모든 힘을 다한다. 너는 위대한 사람이다.’
유진이 자신을 스스로 소중히 여겨서 ‘자기관리 리더십’에서 자기가 먼저 홀로서기를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 노력 과정 중에 주도적 ‘자기관리’라는 방법을 활용하면 좋겠다. 속사람이 강건하여져서 자신의 권리를 알고 권리를 주장하는 인지 능력을 회복하면 언젠가는 지금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애인도 존중받아야 한다. 원만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차별대우나 천대를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재능이 많고 예뻤던 그녀는 멸시와 천대와 원망과 자포자기 속에서 분노만을 표출하고 있다. 유진에게는 먼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타인을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유진을 보면서 타인을 용서하는 삶을 생각한다.
이영선 NGO학 박사 울산교육청청렴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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