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락'. 그는 어떻게 50조 날린 괴물이 되었나

2025-01-16

2022년 루나코인 사태 모티브

사회적 메시지 담은 범죄드라마

한탕주의 매몰된 인간 군상과

탐욕과 몰락 과정 생생히 그려

故 송재림 배우 마지막 작품

자기 확신과 자조 경계 오가며

복잡한 감정 섬세하게 표현

주인공 내면 설득력 있게 그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평균 월급 353만 원, 대구시 아파트 평균 분양가 3.3㎡당 2천2백만 원. 집 한 채를 사기 위해서는 수십 년을 일하고 저축하며 노력해야 한다. 만약 한 달 월급 300만 원을 투자해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전 재산을 수십 배로 불려줄 수 있다는 제안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5일 개봉한 영화 ‘폭락’은 ‘사람들은 몇 번을 망해도 왜 또다시 투자에 뛰어드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현대사회 필수 불가결한 ‘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좋은 소재이다. 영화는 한 청년이 어떻게 한탕을 꿈꾸는 괴물로 자라나는지를 아동기부터 보여주면서 그의 일대기를 통해 탐욕과 몰락의 과정을 그려낸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도현(송재림)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위장전입을 통해 대치동 교육 특구로 입성한다. 사실 도현이 대치동으로 무리하게 위장전입을 하게 된 계기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도현의 어머니 옥자(소희정)는 자신이 믿고 있던 무당이 “도현이는 일확천금을 쫓다 망한 아버지의 운명을 따를 기미가 보인다. 이런 애는 공부라도 시켜야 한다”고 점지하자 옥자는 도현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큰돈을 써서라도 대치동에 위장 전입시켰다.

도현은 대치동 생활에 크게 위축되거나 힘에 부쳐하지는 않는다. 집에 데려다준다는 다른 학부모의 제안에도 ‘걸어서 5분 거리’라고 거짓말을 하며 자리를 피한 후 대중교통을 타고 새벽 3시에야 집에 도착한다. ‘보여지는 건,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사람들이 무시를 안하거든’ 꿈속에서 도망간 아빠가 도현에게 남긴 말처럼,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도현의 모습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있지만 이 모든 건 모두 가난이 만들어낸 절박함일 뿐이다.

도현의 변화는 어머니의 무심한 말 ‘나는 너에게 기대가 없다’에서 촉발된다. 이 한마디는 도현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가 되는 트리거로써 작용한다.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도현은 창업 투자 동아리에서 청년 창업 지원금 부정수급으로 ‘눈먼 돈’을 쉽게 만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더 큰 한탕을 향해 달려간다.

대학 졸업 후 도현은 와튼스쿨 출신 사업가 케빈(민성욱)과 손잡고 가상화폐 마미(MOMMY) 코인을 론칭하며 거대 사업가로 도약한다. 그러나 한탕주의에 집착한 그의 삶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2022년 전 세계를 뒤흔든 루나(LUNA)코인 대폭락 사태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당시 루나코인을 설계하고 운영했던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는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고정 가치로 발행되는 암호화폐)을 통한 새로운 금융의 미래를 제시했다. 2022년 5월 국내외 10만 원 선에 거래됐던 루나코인은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 6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루나코인은 어느 날 갑자기 99.99% 이상 폭락했고 시가총액 50조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국내 피해자만 28만명에 달했고 세계 주요 가상화폐 업체는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스스로 루나코인 사기 피해자임을 밝힌 현해리 감독은 본인의 경험과 집요한 조사를 바탕으로 가상화폐와 한탕주의에 매몰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냈다.

지난 6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현 감독은 “본인이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며 이는 단순히 한 인물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적 공범이 존재하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사업가일 뿐이다”며 울부짖는 도현의 대사로 관객들은 영화가 단순히 한 사건을 다룬 오락물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범죄 드라마로 느끼게 된다.

영화 ‘폭락’은 故 송재림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송재림은 양도현의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사업가로서의 근본 없는 자기 확신과 무너져가는 자조의 경계를 오가며 관객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송재림의 가는 눈매와 텅 빈 눈빛은 도현의 허망함과 폭주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은 영화의 여운을 더하며 그가 남긴 연기적 유산을 되새기게 된다.

아직 루나코인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해외로 도주한 후 잠적을 감췄던 권도형은 2023년 3월 24일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을 쓰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지 1년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31일 그는 미국으로 인도되어 현재 뉴욕 브루클린의 연방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8일 열린 첫 재판 전 협의에서 본재판 개시 일정을 내년 1월 26일로 잠정 결정했다. 그는 미국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최대 130년 형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영화 ‘폭락’은 루나코인을 ‘마미 코인’으로 재구성하며 루나 코인 폭락 사태를 모티브로 삼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달빛’과 같은 상징적 연출을 통해 가상화폐의 유혹과 위험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금융 시스템의 허점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다시금 통찰하게 한다. 배우 송재림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메시지를 곱씹으며, 영화 ‘폭락’이 남긴 여운은 관객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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