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는 직장인 이모(59)씨는 재건축 아파트 한 채를 고3 수험생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절세도 할 겸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세대분리를 한 뒤 아파트를 물려줄 계획이었지만 최근 마음을 바꿨다. 이씨는 “아파트값도 계속 오를 것 같고 부동산 세금도 강화될 것 같아서 시점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부동산을 팔지 않고 물려주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1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부동산 증여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한 수증인(내국인)은 2107명으로 8월(1462명)보다 44.1% 늘었다. 올해 1~8월 월 평균(1514.1명)보다 39.2%, 지난해 9월(966명)보다 118.1% 각각 급증했다. 서울에서 증여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자 수가 월간 기준 2000명을 넘긴 건 지난 2022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보통 부동산 증여는 집값 상승기에 활발하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각종 세금도 따라 상승하기 때문에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증여를 서두르는 경향이 강해진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서울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은 5.53%로, 지난해 같은 기간(3.69%)보다 2%포인트가량 높다.

서울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도 매매 대신 증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결국 ‘똘똘한 한 채는 오른다’는 믿음이 서울 아파트를 물려주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9월 증여에 의한 소유권 이전등기 신청자는 고가 아파트가 많은 서초(232명)ㆍ강남(205명)ㆍ동작(126명)ㆍ강동(113명)ㆍ양천(112명)ㆍ마포(106명) 순으로 많았다.
정부가 조만간 부동산 세금 강화 대책을 내놓을 거란 시장 예상도 증여 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이미 강력한 대출 규제(6ㆍ27 대책)와 수도권 부동산 공급 대책(9ㆍ7 대책)을 내놨는데도 서울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패스파인더 부동산전문위원(세무사)은 “새 정부가 상속세를 완화할 거란 기대감이 꺾인 상태에서 ‘증여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원래 상속하려던 재산도 하루빨리 증여하려는 움직임이 가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편법 증여 등을 조사하기 위한 조직인 부동산감독원(가칭)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편법 증여와 관련한 탈세 혐의자 104명을 현재 세무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