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우 부당…그들이 다니는 길 가로등도 희미""교사들의 희생에는 국회·공무원·아동보호전문기관 책임 크다""1형당뇨, 중증난치질환에 포함하고 질병 명칭 바꿔야"
[※ 편집자 주= 이번 특집 기사는 2022년 9월 [삶]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 가족들의 사망과 질병으로 고통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별도로 발췌해 묶은 것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그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린 자녀가 심각한 질병에 걸려도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연합뉴스가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삶] 인터뷰에는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받아낸 사람들이다.
슬픔과 절망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하루를 살아간다.
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정규직이 겪는 부당함을 걷어내기 위해, 교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들은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고 돈과 권력, 자리를 탐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의 경험을 전하고, 조용히 지원하고, 가만히 안아준다.
그들이 한국의 진정한 영웅이다.
◇ 이계호 교수(태초먹거리학교 교장) "내가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딸 때문이었습니다.
딸은 대학생이었던 22세에 유방암에 걸렸고 3년 후에 재발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왜 암에 걸리는지, 암을 예방할 방법은 없는지, 재발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다.
"심성이 착하고 선이 굵었지요.
항암치료를 위해 주삿바늘을 꽂을 때 간호사가 혈관을 잘 못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번 항암치료를 하다 보니 주삿바늘을 꽂을 혈관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딸은 괜찮다면서 간호사를 위로했습니다.
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본인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딸에 대해 가능하면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성장기 삶도 힘들었다.
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시다 도산하는 바람에 고교를 중퇴해야 했다.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때도 세차장에서 시커먼 얼굴을 하고 일을 했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그의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돈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1만원짜리 지폐를 냄비에 가득 넣어 끓이고는 그 국물의 맛이 어떤지 먹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삶의 방향을 바꿨다.
딸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면서 삶과 죽음, 행복, 건강 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고민 끝에 충북 옥천에 태초먹거리학교를 세웠다.
"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너무 많이 실수했고, 엉뚱한 짓을 많이 했지요.
주변을 보니 다른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도 우리 집과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2010년 7월에 암 환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딸이 하늘나라로 간 지 1년 만이었습니다" 그는 태초먹거리학교에서 건강한 먹거리와 식생활 습관, 마음의 자세 등에 대해 무료로 강의한다.
이 교수는 상당수의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단번에 병을 고치는 방법을 찾는데, 그건 바른길이 아니라고 했다.
"암의 후성 인자는 먹거리, 생활 습관, 환경입니다.
암을 극복하려면 이들 3가지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발병 원인이 5년, 10년, 20년 동안 반복돼서 문제가 됐는데, 이걸 고치지는 않고 병원에서 표준치료를 마친 뒤 특효약과 비법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전이가 되거나 재발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보건당국과 대형 병원들에 바라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건 암 환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의 강화다.
"우리나라의 큰 병원은 암 환자 때문에 먹고 삽니다.
암 외의 다른 진료과목은 거의 모두 적자로 알고 있습니다.
암 환자에 대한 병원의 관리시스템은 부실한데,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준치료에 대해서는 보험회사가 비용을 커버해주지만, 그 이후의 암 환자 관리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암이 재발하면 병원이 또 표준치료를 해줄 뿐입니다.
이런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이러니 대한민국 암 병동에는 환자가 넘치고 넘치는 것입니다"
그는 먹거리에 대한 걱정도 많다.
"나는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를 분석해봤습니다.
내가 세운 벤처기업 한국분석기술연구소에는 식약처 등이 먹거리 분석을 의뢰해오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람의 먹거리, 대형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1차 농축수산물과 2차 가공식품을 많이 분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거리 문제가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붉은 명란젓, 뷔페식당에서 색깔이 선명한 채소와 과일류 등은 건강에 이롭지 않다고 했다.
보기 좋은 색깔을 내기 위해 산화방지제인 아황산나트륨을 뿌려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술과 담배뿐 아니라 커피도 발암물질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루에 1∼2잔은 괜찮지만, 그 이상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커피 업자들은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팔리는 많은 상업용 커피를 3년간 분석했습니다.
캔 커피, 커피믹스뿐 아니라 지역의 유명 브랜드 커피까지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먹거리에 유난히 민감한 한국 사람들이 커피의 발암 물질에 둔감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커피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아크릴 아마이드, 벤조피렌이 생기는데, 한국의 대부분 커피 업자는 발암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지 체크하지도 않습니다"
◇ 김용균재단 이사장 김미숙 "아들(김용군)이 다녔던 회사의 경우 정규직이 다니는 길은 환했는데, 비정규직이 다니는 길은 가로등이 희미했습니다.
정규직 식당은 따로 있었고, 식사 내용물도 달랐습니다.
심지어 캐비닛 크기도 차이가 있었죠.
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하청회사들에 페널티를 부과하는데, 정규직이 죽으면 4점, 비정규직이 죽으면 2점입니다.
정규직 1명의 목숨값은 비정규직의 두배라는 의미죠.
산재사고가 없으면 나라에서 세금혜택을 주는데, 서부발전은 5년간 20억원을 받았습니다.
위험한 일을 하청회사에 떠넘겨 노동자가 많이 죽어도, 원청에는 아무도 안 죽은 것처럼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받은 20억원은 원청 직원들이 성과금으로 나눠 갖습니다." 김용균은 2018년 12월 11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충남 당진에 있는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다.
홀로 심야 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24세였던 그 청년은 발견 당시 머리와 몸이 분리돼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머니 김미숙은 하나뿐인 자식이 죽었다는 현실에 남편과 함께 영안실 복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김용균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6년이 됐지만 1천만명의 비정규직이 겪는 부당함은 여전하다는 것이 김미숙 이사장의 진단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급여는 절반밖에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의 급여 수준이 왜 이런지 설명해야 한다.
왜 산업현장에서 비정규직이 훨씬 많이 숨지는지도 답변해야 한다.
그 해명이 궁색하다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돈과 목숨을 빼앗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영진의 잘못이 크지만, 정규직 직원들이 암묵적 또는 밀실의 담합을 통해 이런 구조에 동의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김미숙은 김용균재단 이사장으로서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치기 위해 뛰고 있지만 좌절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정치권의 무신경함에 분노했다.
"그들은 자기 당을 우선시합니다.
자기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돼야 하고, 자기 당이 살아야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면서 국민들 이익보다는 자기들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4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 대전용산초 심미영 선생님 남편 "우리 집 둘째 아이는 만 8세의 딸인데,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왜 안 오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다면서 이제는 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니 그렇게 알고는 있는데, 먼 여행을 간 것으로 이해합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이는 만 13세의 딸인데, 애써 외면하고 슬픔을 표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픕니다.
아내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장대 위의 목걸이, 빗, 화장품이 그대로 있습니다.
아내가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대전용산초 심미영(가명.40대 중반) 선생님은 지난해 9월 하늘나라로 떠났다.
2019년부터 3년간 지속된 학부모의 괴롭힘은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작년 7월 서이초 선생님의 순직을 계기로 과거의 트라우마가 솟아올랐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딸, 남편을 두고 40여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심미영 선생님의 순직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시각이 있다.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학부모들뿐 아니라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도 학부모 편에 섰고, 경찰과 교육청은 방관하거나 책임을 다른 기관에 떠넘기는 직무 유기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심 선생님이 교실에서 큰 소리를 냈다면서 아동학대로 몰아갔다.
근원적으로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도록 법률을 만들어 놓은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이 있다.
심 선생님 외에도 수많은 교사가 이들의 집단적 타살로 희생됐지만 책임자들은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법률과 제도의 수정에 나서야 하는데,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심 선생님의 남편(40대 후반.
회사원)은 힘든 상황인데도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공교육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아동복지법 등 관련법을 제대로 개정해야 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서이초 사태 이후 '민원 대응팀' 가동, 수업 방해 학생 '분리지도' 등의 조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 아내의 사건이 단순한 이벤트성 이슈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교육 현안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지금 교육 현장을 올바르게 잡아가지 못한다면 얼마 후 미래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 김미영 1형 당뇨 환우회 대표 "우리 아이가 4살 되던 해 1월에 당뇨 진단을 받았는데, 6개월 후에는 스스로 혈당 체크를 했습니다.
1년 후인 5살 때는 아이가 직접 인슐린주사를 했습니다.
혈당 체크는 1년이면 4천회 가까이 되고, 인슐린주사는 연간 1천500회 정도입니다.
초중고생들은 복도, 화장실 등에서 인슐린 주사를 하기도 합니다" 김미영 1형 당뇨 환우회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했지만 아이를 위해 그만뒀다.
그는 1형 당뇨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잠이 들면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서 다른 1형 당뇨인과 가족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형 당뇨 아이들의 부모는 아주 힘듭니다.
학교 운동장에 차를 세워놓고 하루 종일 대기하는 부모도 있고, 자녀가 수학여행을 가면 자신도 숙소 옆에 방을 따로 잡아 놓고 있다가 때맞춰 아이에게 인슐린 주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와 연락이 안 되면 혹시 저혈당으로 쓰러진 것이 아닌가 하고 노심초사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고통을 줄여준 것이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다.
김 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체코에서 이들 기기를 도입했다.
매번 피를 내서 혈당을 체크할 필요가 없고, 인슐린도 버튼을 누르면 공급할 수 있기에 1형 당뇨 관리에 아주 유용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고초를 겪었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했다.
검찰, 관세청, 식약처로부터는 7차례 조사를 받았다.
허가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국내에서 판매했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환우회 회원들이 나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고, 나는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라 그들을 도와준 것"이라고 해명에서 처벌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의 이런 삶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조만간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배우 최지우가 주연을 맡았다.
김 대표는 여전히 1형 당뇨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완치가 어렵고,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며, 진단과 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1형 당뇨라는 명칭을 췌도부전증으로 바꿨으면 한다"면서 "1형은 2형과 달리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膵島) 기능이 멈추면서 발생하기 때문인데, 식생활을 잘못해서 걸린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keunyoung@yna.co.kr(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