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유튜브로 시청했다.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시상식답게 채팅창은 소란스러웠지만, ‘올해의 앨범’을 꼽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 그들의 노래는 ‘물에 잠기면서 시작해,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끝나는 이야기’라는 설명처럼 신비로웠다. ‘위풍당당 행진곡’을 편곡한 첫 번째 트랙부터 ‘독립’ ‘물’을 지나 ‘불’에 닿을 때까지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웃으며 ‘삶과 음악’이라는 내러티브를 완성했다. 눈치 보며 키득대고, 배를 잡고 폭소하고, 절망하듯 헛웃음을 짓고. 그렇게 모인 웃음은 아홉 번째 트랙 ‘음악만세’에 이르러 절규로 바뀐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고,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 위기 앞에 선 대우버스 동지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절규하는 기타 선율 속에 녹아든 또렷한 목소리는 2022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37년 동안 버텨낸 싸움에서 승리하며 남긴 연설이었다. 웃음으로 아름다운 혼란을 빚어내던 그들의 음악은 그 대목에서 더없이 단호해졌다. 자신들의 음악이 가리키는 ‘삶’이 공허한 은유가 아님을 선언하듯이.
잔해 위에 선 사람들
지난 26일 토요일, 민주노총 희망버스를 타고 구미로 향했다.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니토덴코’에 맞서 고용 승계를 외치며 고공농성 중인 소현숙과 박정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의도와 남태령을 거쳐 온 깃발 아래, 광장의 경험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응원의 말을 쏟아냈다. 더위와 허기를 달랠 묵밥과 감자튀김은 맛있었지만 봄볕이 너무 따가웠다. 손으로 해를 가리려고 고개를 드는데, 옥상에서 사계절을 견딘 두 사람의 형체가 보이자 금세 눈이 시렸다. 조합원 중 미혼이라는 이유로 고공에 오르기를 자처한 두 사람. 전기와 물이 끊긴 옥상에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업에 맞선 두 사람. 나는 잠시도 견딜 수 없는 따가운 볕을, 비바람을, 추위를 모두 견뎠을 두 사람.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버틸까. 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 싸울까.
이 고통스러운 질문은 지난주 알게 된 또 다른 노동자의 부고에도 닿았다. 2016년 남동공단의 3차 하청 공장에 파견직으로 취업 후, 출근 사흘 만에 시력을 잃은 노동자 이진희. 밀폐된 작업장에서 안전 교육도, 보호구도 받지 못한 채 메탄올에 중독된 그는, 2021년 사고 책임을 미루는 파견업체, 하청업체, 국가를 상대로 투쟁 후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지난 17일 요양 중 병세의 급격한 악화로 끝내 사망했다.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도, 고상한 추모로도 달래지지 않는 애통한 죽음 앞에서, 과연 투쟁과 연대가 무엇을 막을 수 있겠냐는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옥상에 남은 빚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나는 비정규직입니다, 나는 술집여자입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 광장에서 터져 나온 우리의 존재 선언은 언어를 넘어선 절규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민주주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민주주의를 대통령 선거에 가둘 수 없습니다.” 이들은 왜 버티는가? 이들은 왜 싸우는가? 김진숙이 소현숙과 박정혜 대신 대답했다. 그들이 옥상에서 버텨낸 하루하루는 세상이 우리에게 남긴 슬픔과 무력감을 이길 무기라고. 세상 모두가 우리를 외면하고, 지워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불탄 공장 옥상에 여전히 두 노동자가 있는데, 세상은 지난 4개월의 시간을 잊은 듯 다음 국면을 준비한다. 호텔 앞 고공에, 성당의 종탑 위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사에 이름들이 있는데, 세상은 그들을 지우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자고 한다.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참사 유가족 등 광장의 주체를 밀어낸 미래에서 희망을 찾자고 한다.
농성장 바닥에 적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되뇌다 ‘싸움’을 ‘삶’으로 고쳐 읽는다. 나의 존재를 지우는 권력에 내 삶을 맡길 수 없다는 이들이 공장에 남겨진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운다. 싸워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흐느낀다. 자신의 처지가 딱해서일까? 아니. 물에 잠기지도, 불에 타지도 않는 이 형형한 존재들은 싸우는 것이 곧 삶임을 안다. 이들의 흐느낌으로부터 미래가 온다.
(희망버스가 구미 공장에 다녀간 다음날 새벽 4시, 소현숙이 건강 악화로 땅에 내려왔다. 옥상에 오른 지 467일 만이었다. 소현숙의 지난 시간에 고마움을 표하며 진심으로 그의 쾌유를 빈다. 이제 옥상엔 박정혜가 홀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