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州방위군 몰려올라”…지역 축제까지 연기한 시카고

2025-09-06

멕시코 독립 기념일 기리는 ‘엘 그리토’ 행사

라틴계 주민들 “불법체류자 단속 빌미 될라”

미국 제3의 도시 시카고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동시에 멕시코계 주민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멕시코 독립 기념일(9월16일)을 앞두고 약 1주일 동안 ‘엘 그리토 시카고’(El Grito Chicago)라는 이름 아래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올해는 행사를 연기하는 쪽으로 지역사회에서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 ‘시카고의 치안 확립을 위해 주(州)방위군을 투입할 것’이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 때문이다.

앞서 로스앤젤레스(LA)의 사례와 비슷하게 시카고의 멕시코계 주민들도 주연방군의 도시 배치가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오는 16일은 멕시코의 제215주년 독립 기념일이다. 1810년 9월16일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독립 전쟁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간 시카고에서는 독립 기념일을 1주일 앞두고 멕시코계 주민들 사이에 흥겨운 축제가 시작돼 수십만명이 모여 퍼레이드를 여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시카고는 도시 외곽의 광역 지역까지 포함하면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는 대도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시카고 전체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멕시코계 주민이다. 이는 라틴계 주민의 약 74%에 해당하는 숫자로, 시카고에서 멕시코계 지역사회가 차지하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지난 8월 말 백악관에서 연설하는 도중 “시카고는 엉망진창(mess)”이라고 말했다. 이어 브랜든 존슨 현 시카고 시장(민주당)을 겨냥해 “매우 무능하다”며 “우리(연방정부)가 나서 그 일(치안)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 주방위군을 투입해 범죄를 소탕하고 시카고의 치안을 확립하갰다는 의미다.

주방위군은 평상시에는 주지사의 통솔을 받지만 대통령이 ‘비상 사태’라고 판단하면 지휘권이 연방정부로 넘어 간다. 앞서 트럼프는 ‘범죄와의 전쟁’이란 명분을 내세워 LA와 수도인 워싱턴에 주방위군을 배치한 바 있다.

멕시코계를 비롯해 시카고에 거주하는 라틴계 미국인들은 착잡한 표정이 역력하다. 겉으로는 “트럼프를 상대로 저항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주방위군이 시가지에 배치되면 독립 기념일 축제를 즐기려는 시민들과의 충돌로 불상사가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주방위군이 치안 할동을 명분 삼아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나서고 이는 구금, 추방 등 불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멕시코계 시카고 주민 A(25)씨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정파적 이익을 위해 ‘엘 그리토 시카고’ 축제를 방해하고 있다”면서도 “축제 연기 결정은 가슴이 아프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B(30)씨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선 우리 문화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념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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