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달려드는 작품보다 내가 고군분투해서 알아내야 하는 작가들에게 더 큰 매력을 느껴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은 어렵지만, 험난한 독서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이해했을 때 큰 기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안지미 알마출판사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출간해온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가다. 한 문장이 열 페이지를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저항의 멜랑콜리’ 원문은 300페이지가 넘지만 단 한 문장으로 쓰였다.
극단적인 만연체와 혼돈스러운 서사 탓에 국내 출판사 중에서는 알마출판사만이 그의 판권에 관심을 보였다. 알마출판사는 크러스너호르커이뿐 아니라 난해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작품들을 주로 소개해왔다. 가뜩이나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안 팔릴 법한 책들만’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계에 오래 몸담아 보니 무슨 책이 흥행할 지는 예측불가의 영역이더군요. 그래서 ‘설령 망해도 과정이 즐거운 책을 내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즐겁게 만든 책이 우연히 잘되면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알마출판사는 유명 작가를 좇는 것보다 '색깔 있는' 출판 기획에 중점을 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마 인코그니타’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문학을 소개하는 시리즈다. 일본 극작가 오카다 도시키, 프랑스 작가 에르베 기베르, 대만 작가 우밍이,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등의 에세이·소설·사진집을 출간했다. 그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작품들이기에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독립된 시공간 속에서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읽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그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정신이 유영하는 느낌이 들 것”이라면서도 “난해하고 어두운, 종말론적 세계관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자 한 자 읽다 보면 그 속에서 희망과 유머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또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스스로를 정확히 표현한 것 같다”며 “파국으로 치닫는 세상 속에서도 결국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예술뿐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처음 크리스너호르커이를 접하는 독자들에 권하는 책은 ‘사탄탱고’다.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은 탱고 스텝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형적 구조를 지녔다. 그는 “‘책과 영화를 함께 감상하면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조만간 영화 상영회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출판사는 영상·연극·문학이 교차하는 희곡은 물론 그림집·사진집 등도 출간한다. 독자들과 소통을 위한 모임도 꾸준히 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희곡 낭독회에는 지금까지 수백 명이 참여했다. 안 대표는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면 혼자 독서할 때와는 다른 공기가 형성된다”며 “종이 위에 구현된 활자 극장 같은 희곡, 시나리오 등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알마출판사는 ‘즐거운 초과 근무’에 돌입했다. 발표 직후 기존 재고가 모두 소진됐고 ‘사탄탱고’ 1만 여권을 포함해 총 2만 권 가량의 주문이 들어왔다. 안 대표는 “긴 연휴로 인쇄기를 돌리지 못했지만 금주 중 대부분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반짝 관심이 아닌 긴 호흡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