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은 보험계사·칼럼니스트ㅣ얼마 전 OTT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를 보던 중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의 초등학교 시절 에피소드였는데, 극 중 담임선생님이 반장에게 자습 시간 동안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매’를 건네며 말한다. 말썽을 피우는 학생에겐 매를 들어도 좋다고. 즉, 반장이 교사의 대리를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권한을 위임받은 반장은 한 학우가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손바닥을 때린다. 그 장면에서 직업병인지 담임선생님과 반장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관련 뉴스에는 '금융당국'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한 번씩 고개를 갸웃해본 경험이 있을 테다. 과연 ‘금융당국’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바로 금융당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얼핏 보면 용어가 비슷해서인지 단어만으로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확 와닿지 않겠지만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동안 압도적으로 자주 접하는 이름은 바로 금융감독원이다. 이는 금융감독원과 보험사가 감독-피감독의 위치에 있어서다. 보험설계사를 포함해 보험사는 금융감독원의 감독과 감시를 받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한민국 금융당국을 구성하는 핵심 기관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지위와 역할, 성격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먼저 금융위원회는 정부 기관의 하나로 국무총리 소속이며 금융정책 및 제도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면 금융 관련 법령의 제정 및 개정, 금융 기관의 설립과 합병, 영업 등의 인허가, 금융감독원의 지도와 감시 업무를 담당한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므로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의 지휘 및 감독을 받아 금융 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검사와 감독 실무를 집행하는 곳으로, 금융위원회 산하에 있지만 정부 기관으로부터 독립된 무자본 특수 법인이다. 근무하는 이들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직유관단체에 해당해 공무원인 듯, 공무원 아닌, 공무원 같은 위치에 있다. 대표적으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에 의문이나 불만이 있을 때 보험사와 가입자(소비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는 금융감독원에 민원 제기를 하고 금융감독원은 회사와 소비자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관계가 담임선생님과 반장의 관계 같다고 했는데, 이는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지켜야 할 교칙을 정하고 반장에게 교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고하라는 권한을 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반장이 칠판에 떠든 사람의 이름을 적는 장면을 기억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테다.
이때 선생님은 금융정책(교칙)을 만드는 금융위원회에, 반장은 이를 근거로 학생(금융 기관 및 관련 인물) 을 관리, 감독하는 금융감독원과 같은 역할에 해당한다. 반장은 떠든 사람의 이름을 왜 적는 걸까? 이는 학급 분위기를 평화롭게 조성하고 다른 학생들의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이 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융소비자의 보호야말로 가장 큰 업무라 하겠다. 담임선생님은 공무원이지만 반장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도 둘의 차이는 명확해진다.
지난 9월 금융당국과 관련해 금융권을 술렁이게 한 큰 이슈가 있었다. 정부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합쳐 새롭게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한다는 내용으로, 단순히 조직 명칭 변경만이 아니라 금융정책과 감독 체계 전반에 걸친 중대한 변화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론적으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막판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조직을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감독 체계 개편 대신 소비자 보호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합의된 방향을 제시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의 시선 아래 일하고 있는 설계사의 한 사람으로 나 또한 이번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의 근절을 위해 회사가 더욱 엄격하고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자유와 감독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담임선생님-반장-학생이 서로 주어진 책임에 소홀하다면 교실의 질서는 엉망이 될 게 뻔하다. 보험업계도 금융당국-보험사-설계사-가입자가 서로 자기의 이익과 주장만 내세운다면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 들어두는 보험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서로를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벽을 치며 유지하는 아슬아슬한 균형보다는 손에 손을 맞잡듯 견고하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금융당국의 개편 또한 그런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