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살 예방 앞장선 복지부, 직원 정신건강 '재난' 수준…70%가 '빨간 불'

2025-10-13

보건복지부 공무원 10명 중 7명이 정신 건강 위험군에 해당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살 예방이란 국정 과제의 수행을 맡은 주무 부처가 정작 정신 건강 위기에 놓였다는 얘기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5월 30일부터 이달 27일까지 5개월간 '2025년 보건복지부 직원 마음건강 진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조사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4대(의료·연금·노동·교육) 개혁 중 의료·연금 개혁을 복지부가 주도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지적에 따라 시행됐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이 진행한 해당 연구에는 전체 직원 860여명 중 74%인 642명이 참여했다. 중간 조사 결과, 응답자 40.5%(260명)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사한 조사에서 확인된 소방공무원(6.3%)이나 일반 국민(19%)의 수준보다 훨씬 높다. 연구 책임자인 김정현 교수는 중앙일보 서면 질의에 "가장 심각한 단일 지표(40.5%)는 중등도 이상 우울 증상으로, 이는 즉각적인 전문적 평가와 치료가 고려돼야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불안 영역에서는 응답자 21.2%(136명)가 최근 2주 내 '임상적 주의가 요구되는 불안 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상 수준으로 평가된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43.1%(277명)에 그쳤다.

수면 문제도 심각했다. 응답자 65.7%(422명)가 수면 문제를 호소했다. 이 중 26.4%(169명)는 중등도 이상의 불면을, 7.2%(46명)는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심각한 불면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음주 문제에서는 응답자 15%(96명)가 문제 음주군으로 분류됐고, 이 중 8.6%(55명)는 알코올 사용 장애 등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정신·불안·수면·음주 4가지 영역 가운데 하나 이상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된 직원은 전체 74.9%(481명)에 달했다. 이는 소방공무원 집단의 유사 지표(43.9%)보다 3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김 교수는 "개인적 취약성을 넘어 조직 환경이 직원들의 정신 건강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밝혔다.

"혼자 일하다가 쓰러져" 직원들 고충

복지부 직원들의 정신 건강 악화 원인으로는 장기간 누적된 과도한 업무가 지목된다. 복지부는 코로나19(2020~2024년), 이태원 참사(2022년), 의사 집단행동(2024~현재) 등 각종 재난·보건·복지 위기 대응의 중심에 서 왔다. 이 과정에서 긴급 현안 대응을 위해 대규모 파견·차출이 반복되면서 본 소속과 파견 업무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두 집 살림'식 근무가 일상화했다.

의·정 갈등에 대응하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파견 경험이 있는 한 직원은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오전 1~2시에 퇴근해 오전 9시에 다시 출근하는 삶이 반복됐다"고 털어놨다. 다른 직원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고, 겸직 근무가 반복되다 보니 내부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복지부의 업무량은 18개 부처 평균의 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업무량 상위 5개 부처(복지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교육부·고용노동부) 평균과 비교해도 약 1.6배 높다.

이 같은 상황은 휴직률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복지부 직원 휴직률은 17.4%로, 타 부처 평균(11.3%)보다 1.5배 높았다. 이번 마음건강 진단에서도 응답자 절반 이상(55.3%)이 번아웃(소진)을 호소했다. 과부하형(18.1%), 효능감 저하(14.3%), 이탈형(6.1%) 등 관련 유형을 합치면 직원 93.8%가 직무에서 심리적 소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 과장은 "코로나19 때 파견·차출 등으로 근무자가 다 빠져나가면서 혼자 일하다가 쓰러진 적도 있다. 주변에도 과로 등으로 인한 병가가 적지 않다"며 "수년간 이어진 업무 과부하에도 승진·증원이 거의 없어 내부 구성원들 정신 건강이 많이 흔들리는 게 체감된다"고 한숨 쉬었다. 최근 5년간 정원이 늘어난 16개 부처의 평균 증원 규모는 34명이지만 복지부는 7명에 그쳤다.

함께 격무 부처로 꼽히는 국토부나 고용부는 같은 기간 각각 50명가량 늘었다. B 과장은 "휴직자는 늘어나면서 남은 인원이 과중한 업무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과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일하자'고 말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종헌 의원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고 질의를 시작했지만 현 복지부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며 "국민 전 생애구간을 다루는 복지부는 사명감과 소명으로 버텨 온 집단이기에 충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정부는 인력·보상·업무 배분의 현실적인 괴리를 인정하고, 당장 실행 가능한 대책부터 가동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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