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15년 초, 연말정산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근로소득세의 여러 소득공제를 손보아 역진성을 개선하는 세제개혁을 단행했다. 다자녀 또는 1인 가구에 세금이 늘어나는 일부 틈새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근로소득세의 오래된 문제였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주로 상위계층이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내는 증세 개혁이었다. 그런데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이 틈새를 부풀리며 증세 개편을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몰아갔다. 상대편의 정책은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진영논리가 낳은 대립 구도였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이 ‘세금폭탄’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한겨레21’은 “고소득층이 ‘세금폭탄 논란’ 주도했다”며 세금폭탄론이 지닌 계층적 성격을 꼬집었다.
연말정산 개혁처럼, 박근혜 정부는 보수정당이지만 증세를 추진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세수 부족에도 대응해야 했기에, 소득세 최고세율도 올리고 담뱃세도 대폭 인상했으며 과세행정 역시 강화했다. 사회적 압력이 작동한 결과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증세가 이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보통 민주당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증세정당으로 인식됐다.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를 규탄하며 줄곧 부자증세를 강조해왔다. 특히 촛불혁명의 성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담대한 조세개혁이 기대되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나라를 나라답게”를 공약집 제목으로 내걸었고, 앞으로 “100년을 이어갈 재정정책 개혁의 로드맵”을 수립하겠다며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증세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증세 종합전략이 추진되리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무엇보다 자산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종합부동산세를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원상회복해야 했지만 변화는 미약했다. 법인세도 최고세율은 인상했지만 적용 대상을 더 넓혔어야 했고, 소득세도 극소수에 적용되는 최고세율 구간은 신설했지만 수많은 소득공제들은 그대로 놔두었다. 결국 임기 말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를 맞아 뒤늦게 종합부동산세를 올렸으나 사후약방문이었다. 시민들이 기대했던 담대한 조세개혁 없이 촛불정부 5년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지난 대선이 시작할 때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역대 민주당 정치인 중에 가장 강력한 증세론자로 불릴 만했다. 대선 운동 초반, 이재명 후보는 전 국민 기본소득을 주창했고,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탄소세와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대선일이 다가오고 국토보유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는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는다”며 물러났다. 대선 공약집에도 ‘연 100만원 전 국민 기본소득’은 남았지만 국토보유세 단어는 사라지고 “토지이익배당”이라는 애매한 용어가 재원 자리를 차지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과세부담 완화, 일시적 2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구제, 취득세 인하 등 부동산 세제를 약화하는 공약도 담겼다.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는 증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제 기본소득에 대한 언급은 듣기 어려워졌고, 거꾸로 감세를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부동산 폭등 사태를 맞아 자산가격 상승에 적극 세금을 부과해야 하건만, 오히려 종합부동산세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주식투자 이익이 5000만원을 넘어야만 적용되는 금융투자소득세도 폐지했다. 최근에는 상속세 완화, 근로소득세 공제 확대 등 감세 행보가 더욱 거침없다. 이 대표가 ‘K엔비디아’ 논란에서 “세금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제시한 것도 감세론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로또’ 같은 사례를 들며 세금의 뿌리까지 흔들었다는 점에서 감세론자의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국가가 지분을 가진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러한 기업은 없고 그리 쉽게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부의 세습까지 공공연한 한국 사회에서 진정 민생을 챙기려면 강한 재정이 요구되고 조세부담률이 낮은 한국에선 힘들지만 꾸준한 증세가 이어져야 한다. 지금 집부자, 금융부자 챙기며 세금을 깎아주고 엔비디아 언급하며 면세를 합리화할 때가 아니다.
민주당이 어쩌다 감세정당이 되었을까? 왜 세금을 적게 내고 싶은 상위계층의 이해를 옹호하려 나설까? 무언가 변한 것이다. 피케티가 지적하듯이, 불평등 체제에 편승해 자신의 입지를 지키려는 기득권층의 정당으로 변신, 아니 전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