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근로자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농촌 현장의 인력난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공공형 계절근로제가 본시행 3년 차에 접어들며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많은 농가들은 여전히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다. ‘법보다 생존’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농촌 현장의 절박함에, 우리의 제도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을까. 농촌의 인력 수급 현황을 살펴보고,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짚어본다.

“저희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선 일할 사람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3월 중순, 전남 진도의 겨울대파밭은 적막했다. 성출하기를 맞아 북적여야 할 현장엔 수확하다 만 대파만 나뒹굴고 있었다. 평소라면 대파를 손질하고 묶는 작업으로 분주했어야 할 작업장도 인적이 끊겨 텅 비어 있었다.
A농협 관계자는 “최근 진도 전역을 중심으로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돼 대파 출하 작업이 전면중단됐다”며 “현재 작업장과 노지에 방치된 대파 물량만 40t에 달하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썩어 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도군 지산면에서 1만6528㎡(5000평) 규모의 대파를 계약재배하는 B씨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2일 현재까지도 대파 수확에 손도 못대고 있다”며 “밭을 비우고 15일 고추 아주심기(정식)에 들어가야 하는데 준비 작업도 못하고 있다”며 가슴을 쳤다.
A농협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겨울대파를 수확해 전국 각지로 출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작업장에서 일하는 30여명을 포함해 많게는 전체 200여명을 노지 등으로 일시에 투입해야 한다. 이들 대부분이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불법체류자·불법취업자)’인데, 법무부가 최근 이 지역에서 단속을 강화하자 작업이 마비됐다.
A농협 상무는 “거래처에 납품기일을 맞추기 어려워지면서 올해 계약재배에 참여한 109명 농가의 정산금액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계절근로제(E-8)와 고용허가제(E-9) 두가지 제도를 통해 농업부문 외국인 근로자를 유입하고 있다. 계절근로제를 통해 최장 8개월간 체류 가능한 ‘단기 인력’과 고용허가제를 통해 최장 4년10개월(재입국 시 9년8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장기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선 여전히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에 노동력을 의존하고 있다. 농번기엔 즉시 투입 가능한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워서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매년 새롭게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 매번 기초부터 농업기술을 교육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장기 인력을 도입하기엔 농업의 계절적 특성에 맞지 않다.
농협 관계자는 “계절근로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농업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된다”며 “대파 단 작업의 경우, 숙련자 한명이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을 미숙련자 세명이 겨우 감당할 정도로 생산성 차이가 현저하다”고 토로했다.
이 지역 C농협 관계자도 “오랜 시간 농가와 손발을 맞춰온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루 평균 250단의 작업량을 처리하는 반면, 새롭게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경험 부족으로 하루 100∼150단 정도만 처리할 수 있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월급제’ 방식이 농촌 현실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컸다. 농작업은 기상 조건에 따라 작업 일정이 유동적으로 결정되므로, 농민과 농협은 월급제보다 일당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월급제로 근로계약을 할 수밖에 없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 사목센터 ‘나오미센터’ 소속 김상훈 사무국장은 “농가 경영비 부담 등으로 인해 대다수 농가는 외국인 근로자를 한달에 200만원 주고 고용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존 제도를 보완해 2023년 도입한 ‘공공형 계절근로제’도 이 지역엔 그림의 떡이다. 지자체가 해외 인력 송출국과의 업무협약(MOU) 등을 통해 계절근로자를 도입하면 농협은 이들을 월급제로 고용해 필요 농가로부터 일당을 받고 공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농협 경제사업장에서의 작업은 개인별 총 근로시간의 30%로 제한하고 있어 인력 활용에 한계가 있다.
직접 고용에 따른 지역농협의 부담 역시 사업 도입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C농협 관계자는 “주휴수당과 시간 외 근무 수당 지급은 물론 기숙사 관리까지 농협이 책임져야 할 범위가 너무 크다”며 “특히 성출하기엔 일일 대파 납품물량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주말 근무가 불가피한데, 현행 제도로는 이러한 농업현장의 특수성을 융통성 있게 반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업을 이미 시행 중인 농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나주지역 D농협 관계자는 “이탈자 관리 등 리스크가 커서 농가의 반응이 좋아도 인력을 40명에서 올해 30명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불법인 줄 알면서도 미등록 외국인 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규모농가의 경우 인력 수요가 크고 오랜 시간 관성적으로 사용했던 사설 인력시장을 활용하는데, 여기에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며 “그러나 해마다 외국인 근로자 배정 인원이 늘고 있고 공공형 계절근로제가 도입 초기인 만큼 제도의 안정화와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도=이시내 기자
계절근로제 실효성 가지려면? 미등록 외국인력 정확한 실태 파악 우선
국가간 업무협약 방식으로 전환
체계적 선발과정·농업교육 도입

전문가들은 농촌 외국인 근로자와 관련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하려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농업분야에선 지역별·품목별·시기별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특히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지만, 그 정확한 규모와 실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국내 농가와 법인을 대상으로 인력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를 올해 발표할 예정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수립으로 전환하겠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지만, 뒤집으면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 쿼터 배정이 정확한 수요 조사 없이 진행돼 왔다는 반증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외국인력 수급 때 중앙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성철 전북 남원농민회장은 “현재 계절근로자 도입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 현지와 개별 업무협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어 지자체별 관심도와 역량에 따라 인력 수급에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인력 수급을 위해선 국가간 업무협약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력의 농업숙련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발 단계부터 근로자 이력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선발 과정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1개월간 임금의 50%만 지급하고 교육에 집중하는 인턴제를 도입하면 숙련도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 보호 조치도 필요하다.
마 연구위원은 “중간 브로커 개입 시 임금 착취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근로자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무분별한 단속과 추방은 오히려 이들을 불법 영역으로 더욱 내몰 위험이 있다”며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에 한해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양성화방안 논의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시내 기자 ci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