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폭설이 내렸다. 기상 관측 이래 11월에 내린 가장 큰 눈이다. 예상치 못한 폭설에 사람들은 미끄러운 도로에 갇혔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자비없는 잔인한 계절 겨울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아픈 시련의 시절과 닮았다. 큰 시련과 아픔을 마주한 고통스러운 삶의 이면에 자리잡은 아련함과 공허함.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 겨울에 얽힌 이야기가 유독 많은 이유도 겨울이 가진 정서가 단순히 정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월 본격적인 한파가 예고된 가운데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다양한 연극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위트있게 인생을 고찰하는 겨울 개봉 연극 5편을 소개한다.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마르틴, 마르틴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하는 극작가 S, 마르틴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배우 페데리코의 이야기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작품 속 세 인물은 존속 살인, 신화, 문학, 음악, 극예술, 스포츠까지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나와 타인의 관계성, 예술과 현실, 허구와 진실, 그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테베랜드’는 2013년 우루과이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10여 년간 영국,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등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2023년에 처음 공연됐다. 심오한 토론과 고전의 인용, 위트 넘치는 대화,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깃든 감정의 울림까지, 극은 관객에게 명확한 정의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각자의 해석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17세 이상 관람 가능하며 내년 2월 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타인의 삶
인간의 선한 의지는 과연 어디서 오는가. 연극 ‘타인의 삶’은 200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영화제 80개 수상 기록에 빛나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의 국가보위부에서 활동하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다음 감시 타겟으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꼽는다. 탁월한 심문 실력과 흔들림 없는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한 비즐러가 동독을 넘어 서방세계에서도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를 만나며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게르트 비즐러 역엔 윤나무, 이동휘, 게로그 드라이만 역엔 정승길, 김준한이 캐스팅됐다.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 역엔 최희서, 브루노 햄프 외엔 김정호가 나온다. 그루비츠 외는 이호철, 우도 외엔 박성민이 연기한다.
연극 ‘타인의 삶’은 내년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보이즈 인더 밴드
'흑인, 여성,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이 일어난 시기 동성애자의 삶을 진솔하게 다룬 연극. 마크 트롤리 원작으로 1968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미국 연극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다. 2018년 초연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제73회 토니어워즈 연극 부문 '최우수 리바이벌 상'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 초연이다.
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한 아파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일곱 명의 게이 친구들과 두 명의 손님이 모인다. 한 장소에 모인 9명의 주인공들은 끊임없는 자기 혐오와 연민, 갈등을 지속한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진솔하고 인간적인 내면 심리가 울림을 준다.
고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며 12월 29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에서 공연된다.
■대학살의 신
'어른들 싸움'의 끝을 보여주는 생활형 블랙코미디. 11살 소년 브뤼노와 페르디앙은 놀이터에서 싸움을 벌이고, 페르디앙에게 맞은 브뤼노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진다.
브뤼노의 부모 미셸과 베로니끄는 페르디앙의 부모 알랭과 아네뜨를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의논하고 교양과 매너로 가득했던 두 부부의 고상한 만남은 대화를 거듭할수록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된다. 삿대질, 물건 던지기, 욕지거리, 눈물이 뒤섞인 육탄전이 싸움의 끝을 보여준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연극 '아트'로 전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지식인의 허상을 유쾌하고 통렬하게 꼬집는다. 무대장치 없이 오직 대사와 연기만으로 치열한 '말'의 싸움을 전개한다.
2009년 토니 어워즈, 올리비에 어워즈,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으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주연 영화로도 리메이크 됐다.
중학생이상 관람가로 내년 1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톡톡
강박증 치료의 최고 권위자 스텐 박사. 그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섯 명의 환자들이 차례로 대기실에 들어온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욕설의 뚜렛증후군 프레드, 쉬지 않고 계산하는 계산벽 뱅상,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손 씻기 바쁜 질병공포증 블랑슈, 50번을 넘어서 확인을 이어가는 확인 강박증 마리, 무조건 두번씩 말하는 동어반복증 릴리, 모든 사물은 대칭을 이뤄야 하는 대칭집착증 밥은 박사를 기다리며 게임을 시작한다.
2005년 프랑스 파리 초연 이후 2006년 프랑스 최고 연극상 몰리에르상을 수상했고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세계를 돌며 각 1000회 이상 공연했다. 2016년 한국 초연 이후 2024년 한국 관객 1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 10세 이상 관람가로 내년 2월 23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서 공연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