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 1795년, 역사의 길이 탄생하다

2025-02-25

1795년 윤2월 9일,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장엄한 7박 8일의 정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3월 29일로 매화꽃이 한창인 봄이었고, 길가 여기저기에는 농사일을 시작한 백성들이 바삐 움직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1796)에 수록된 행렬 그림인 반차도(班次圖)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등장하고, 정조의 친위대인 장용영(壯勇營)을 비롯하여 군사 4,500여 명을 합하면 6천 명을 훌쩍 넘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효심만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정치적으로 계획되고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결정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힘이 그 누구보다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권력이 혈연을 통해 승계되던 조선에서는 어떠했겠는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할아버지 영조(재위: 1724~1776)에 이어 1776년 3월 10일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를 외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개혁정치의 불가역성을 선언하고 과시하기 위한 정치 퍼포먼스로 만들고자 1년여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했다. 고도의 이미지 정치다. 창덕궁에서 화성행궁-현륭원을 오가는 5일간의 행차도 예외일 수 없다. 단순히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길의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적 함의를 부여하여 검소하면서도 장엄한 정치적 관광(觀光)의 모습으로 계획했다.

이 소중한 역사의 길이 옛 문헌의 기록과 그림, 길과 그 위에 점점이 펼쳐지는 많은 유적과 이야기로 21세기의 우리에게 전해지며 함께 걸어보지 않겠냐는 손짓을 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지도 제작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수도 서울에서 융건릉까지 100리로 기록돼 있으니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라 명명하면 딱 좋지 않을까?

필자는 2024년 9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창덕궁의 돈화문부터 융건릉의 입구까지 전 구간을 직접 걸어봤다. 18일에는 동일한 코스를 자동차로 이동하며 현대의 미터법으로 측정했는데, 정조의 원행을묘 날짜별 이동 코스와 거리는 이렇다.

①윤2월 9일 [오전] 창덕궁 돈화문 → 숭례문(2.8km) → 용양봉저정(5.8km) [오후] 구로디지털단지역(5.6km) → 시흥행궁(4.0km) * 구간 (18.2km)

⓶윤2월 10일 [오전] 시흥행궁 → 안양역(6km) → 사근행궁(7.5km) [오후] 노송지대(4.1km) → 화성행궁(5.2km) * 구간(22.8km)

⓷윤2월 12일 [오전] 화성행궁 → 세류역(4.2km) → 안녕리 표석(4.9km) → 융건릉입구(2.9km) * 구간(12.0km)

전 구간의 합계는 53.0km인데, 하루 만에 걸어서 돌파할 현대인은 없을 것 같다. 첫째 날 18.2km, 둘째 날 22.8km, 셋째 날 12.0km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 걸어가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혹시 저질 체력의 소유자라면 오전과 오후의 일정을 각각 하루로 계산하여 5일로 잡으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 무리인가? 필자는 이후에도 두 번을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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