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물가·부채… 日 ‘사나에노믹스’, 출발부터 험로[글로벌 인사이트]

2025-10-07

이달 중순 차기 일본 총리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유민주당 신임 총재가 출발부터 만만치 않은 과제와 맞닥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이달 말 일본을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5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문제를 놓고 담판에 나서야 한다. 또 인플레이션과 국가 채무 문제를 악화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주창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 이른바 ‘사나에노믹스’를 안착시키는 정책 수완도 발휘해야 한다.

금리 인상 두고 "바보” 비판 이력… 日 증시 ‘불장', 엔저 가속

다카이치 총재는 확정 재정 정책과 완화적 통화 정책을 핵심으로 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 계승자를 자처한다. 자민당 총재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2021년 당시에도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노믹스를 자신만의 스타일인 ‘사나에노믹스’로 이어 받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자 이를 “바보”라는 말로 원색적으로 비판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사나에노믹스의 현실화에 일본 닛케이지수는 7일 사상 처음으로 장중 한 때 4만 8000 선을 넘어서는 등 말 그대로 ‘불장’에 돌입했고, 엔화는 달러 대비 150엔을 넘어 서며 엔저 현상이 강화하고 있다.

당장 이르면 이달로 예상됐던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재개가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총재의 경제 정책 자문관인 혼다 에츠로 고문은 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하며 “10월 금리 인상은 제 생각에 어려울 것 같다”며 “거시 경제 환경에 달려 있지만, 올 12월에 0.25%포인트 금리를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혼다 고문의 발언을 다카이치 체제에서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혼다 고문은 아베노믹스의 주요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인플레·국가 채무 무시했다가는 ‘트러스 쇼크’ 재연 우려

이달로 유력시되던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재개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앞서 니혼게이자이(닛케이)와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일본은행 내에서 금리 인상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기도 했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와 비교해 3~4% 가량 높은 인상률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지속하고 있는 점도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재 선출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에 재임하며 사나에노믹스를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도 이점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재는 이번 선거에서 ‘대담한 투자’와 ‘재정 건전성’ 모두에 방점을 찍은 일종의 ‘사나에노믹스 2.0’을 내세웠다. 입헌민주당 등 야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소비세 감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으며, 금리 결정은 “일본은행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며 과거 ‘바보’ 비판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국가 채무가 확장 재정을 펼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사나에노믹스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 순부채 잔고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2023년 기준 일본이 136.0%로 국가 채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꼽히는 이탈리아(124.1%), 프랑스(101.6%)보다도 높다.

이 같은 점을 근거로 외신들은 다카이치 총재가 2022년 고물가에 섣부른 감세안을 내놨다가 취임 44일 만에 물러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는 “다카이치 총재는 자신이 우상이라고 밝힌 마가렛 대처 같은 총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시장에 충격을 안겨준 트러스 전 총리를 떠올리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외교 무대 데뷔전 상대가 하필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해야 하는 무역 정책은 더 큰 난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7일부터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다카이치 총재는 신임 총리로서 첫 외교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6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일본이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를 선출했다”며 “탁월한 지혜와 강인함을 지닌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NHK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그가 첫 임기 때인 2019년 5월 찾았던 일본 요코스카의 미 해군 기지를 다시 찾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특히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참석 차 한국에는 하루 가량 머물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 기간을 3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일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일 정상 간 대화의 의제는 녹록지 않다. 최대 화두는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마무리 짓는 문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일본 양국이 합의한 대미 투자 방식은 투자 최종 권한을 트럼프 대통령이 보유하고, 미국이 최종적으로 투자 수익의 90%를 갖는 구조다. 그러나 양국이 합의를 맺은 이후에도 양측의 입장 차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일본 측 관세 협상을 이끈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최근 외국 특파원들과 만나 “(5500억 달러에서) 실제 투자금은 1~2%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대출과 대출 보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일본의 투자금이 ‘현금 선불’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차이가 크다.

다카이치 총재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과 필요하다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다카이치 총재에 대한 기선 제압에 나설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를 쌓아 미일 동맹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관문”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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