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의 계정공유] '대환장 기안장' 기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넷플릭스의 돈으로…

2025-04-17

[비즈한국] 눈물을 뺐으니 웃음을 주겠다는 넷플릭스의 의지일까? ‘폭싹 속았수다’로 근래 많이 울었는데, 기안84의 넷플릭스 데뷔작 ‘대환장 기안장’ 때문에 또 많이 웃었다. 개인적으로 기안84라는 캐릭터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나 혼자 산다’에서 ‘태어난 김에 사는’ 그의 면모에 웃은 적도 있지만, 너무 종잡을 수 없는 부분이나 혹은 너무 날것의 행동들이 종종 불편하고 무례하게 느껴졌기 때문. ‘대환장 기안장’도 기안84가 메인이라길래 보지 않을까 했다. 유명인이 낯선 곳에서 숙박업을 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버라이어티도 많았으니 뻔한 그림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 기안84가 주인장이 되니까 너무 종잡을 수 없어 숨이 넘어가게 만든다.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라는 날것의 대명사인 인물을 내세우긴 했지만, 정효민 PD와 윤신혜 작가 등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포진해 있어서 특유의 ‘힐링’이 베이스로 담기지 않을까 싶었다. 손님들 역시 그렇게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타이틀롤에 기안84의 이름과 ‘대환장’이란 단어는 괜히 들어간 게 아니었다. 기안84 특유의 ‘기안적 사고’로 흘러가기에 “이게 맞아?” 싶은 ‘현타’와 의구심, 상상을 초월하는 예측 불가한 이야기와 포복절도로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힐링? 물론 힐링도 없진 않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힐링과 결은 다를 수 있다.

‘대환장 기안장’의 민박이 펼쳐지는 장소는 울릉도다. 그런데 기안84가 운영하는 민박 ‘기안장’은 울릉도 내에 있지 않다. 울릉도 앞 바다에 뜬 바지선(강과 운하 등에서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제작한 바닥이 평평한 선박) 위에 있다. 말 그대로 바다 위의 숙소인 셈이다. 외관도 저 멀리서부터 한눈에 시선을 강탈할 만큼 기상천외하다. 전체적으로 노랑색 톤에 파스텔 색깔로 디테일이 꾸며져 있다. 워터 슬라이드를 겸하는 미끄럼틀과 형형색색의 클라이밍, 마치 창문 테라스처럼 밖으로 튀어 나와있는 침실 공간 등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숙소보단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랍다. 우선 들어가는 문이 없어 3.8미터 높이의 입구로 클라이밍 해서 올라가야 한다. 내부에도 계단이 없어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가려면 봉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한다. 밖으로 튀어 나와있는 노상 침상은 안전 벨트를 착용하고 자야 하는 구조로, 새벽에 급작스레 내리치는 빗방울에 강제 기상할 수도 있다. 태풍 등 날씨를 고려해 섬 내에 별관이 있긴 한데, 거기서도 일상적인 숙소를 기대해선 안 된다. 주방과 침실 공간이 벽 없이 붙어 있는데, 주방에 굴뚝이 없어서 요리할 때 연기가 죄다 내부를 점령하는 식이다.

이 대환장스러운 공간은 순전히 기안84의 발상으로 만들어졌다. 독특하다 못해 황당할 정도의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기안84가 만화처럼 쓱쓱 그려낸 한 장의 스케치를 고스란히 구현해 낸 넷플릭스의 자본력도 놀랍다. 기안84 역시 “실제로 만들 줄 몰랐다”고 놀라워한 건 덤. 넷플릭스 리얼 음악 쇼 ‘테이크 원’에서 바지선 위에 무대를 구현한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바지선 위에 민박이라니. 미끄럼틀 워터 슬라이드 타고 바로 바다로 직행해 즐기는 수영이라니.

구조가 독특하니 생활 방식 역시 독특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외부에 있으니, 밖으로 나갈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자칫 물건이라도 놓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면 꼼짝없이 클라이밍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석식을 제공하지만, 먹는 방식은 주인장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카레를 먹을 땐 인도인처럼 맨손으로 먹어야 한다더니(심지어 3분 카레다), 이후 내부 주방에선 맨손 취식이 보편화된다. 콩국수를 맨손으로 먹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게 될 줄이야.

보는 내내 요절복통 웃게 되지만, 막상 나더러 저 공간에 손님으로 가라고 하면 진저리를 칠 게 분명하다. 근데 그게 기안84의 발상이었다. 나는 가고 싶지는 않지만 남이 간 건 보고 싶은 곳. ‘효리네 민박’이나 ‘윤스테이’ 같은 편안함이나 따스한 힐링은 없지만, 기안장에는 ‘힐링과 킬링 사이’라는 슬로건처럼 기안84스러운 불편한 낭만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묘한 속 시원함이 존재한다. 어떤 공간들은 너무 완벽하게 꾸며놓고 온갖 규칙을 내세우며 묘한 불편함을 주기도 하는데, 기안장엔 육체적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그런 건 없다.

그리고 불편함에 익숙해지다 보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잠자면서 바라보는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 산속에 위치한 별관을 오가는 모노레일에서 보는 저 먼바다의 노을···. 그리고 숙소의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가까워지는 숙박객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클라이밍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을 도와주는 클라이밍 선수들, 앉을 곳 없는 기안장에 뚝딱뚝딱 의자를 만들어준 유학파 청년 목수, 어린 초등학생 손님들에게 온갖 종류의 벌레들을 설명해주는 카이스트 학생들 등 다양한 손님들이 독특한 기안장 속에 어우러지며 사람 내음을 진하게 풍긴다.

‘대환장 기안장’의 중심은 단연 기안84지만 방탄소년단 진과 ‘SNL 코리아’로 유명한 배우 지예은이 직원으로 합세하며 더욱 오묘한 호흡을 선보인다. 기안84마저도 자신이 설계한 집의 불편함에 괴로워하며 현실과 타협하고자 할 때 원칙주의자 진이 기안84의 흔들리는 초심을 일깨우고, 보드게임과 콩물 기계 등 온갖 MZ 아이템을 구비해온 현실주의자 지예은이 기안84에게 다른 방안도 생각하게 만드는 식. 여느 숙박 예능의 ‘알잘딱깔센 일잘러들’은 아닐지언정 좌충우돌 기안84와 함께 고난을 헤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남매 묘미가 재미나다.

어쩌면 앞으로 기안84의 다른 예능들도 보게 될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초등학생 아들들과 함께 온 숙박객의 암 투병 이야기를 듣곤 조용히 다른 공간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안84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9부작 ‘대환장 기안장은 3주에 걸쳐 매주 3회씩 공개 중으로, 오는 4월 22일이면 끝난다. 시즌2가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면 지금의 기안장을 넘는 공간이 나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고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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