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길이 필요했다.”
장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29일 우승한 박수예(25)는 콩쿠르 경력 없이도 주목받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2017년 17세에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전곡(24곡) 음반을 발매했을 때부터 화제였다. 어렵기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기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음악을 완성시켰다.
이 데뷔 앨범을 포함해 지금까지 낸 음반이 총 5장. 스웨덴의 명문 음반사인 BIS의 대표 아티스트다. 특히 세 번째 음반인 ‘세기의 여정’은 영국의 음반 전문 잡지인 그라모폰에서 2021년 9월 이달의 음반으로, 그해 말 디지털판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그라모폰에는 "획기적이다!(This is sensational!)" "완벽에 가까운 연주"라는 표현이 쓰였다.

보통 연주자들의 경력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꽃을 피운다. 콩쿠르 이후 공연과 음반 녹음 기회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수예는 그 순서를 바꿔 일종의 ‘역주행’을 했다.
30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박수예는 “물론 음반과 공연 같은 경력이 있었지만 다양한 길이 더 필요했다”고 했다. “특히 콩쿠르에 입상하면 생기는 연주 같은 다양한 기회를 얻고 싶었다.” 콩쿠르 출전은 그의 화려한 경력에서 일종의 촉진제였던 셈이다.
콩쿠르가 진행될 때는 결과와 상관없이 연주에만 집중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고 내려오자는 마음이었다. 만약에 여기에서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마지막 본선에서는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하고 우승했다. 우승 이후 그의 예상대로 새로운 길이 열릴 듯하다. 박수예는 “오늘 아침에만 미팅을 2개 하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고 얼떨떨하다”고 했다.
박수예는 대구 출생으로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9세에 독일로 건너갔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의 울프 발린 교수에게 발탁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 선생님에게 배우며 실력을 키웠다.
그동안 낸 음반과 연주 경력을 보면 20세기 근처의 현대 음악에 강한 바이올리니스트다. 바인베르크(1919~96), 윤이상, 슈니트케(1917~95), 쇼스타코비치(1906~75), 시마노프스키(1882~1937) 등이다. 박수예는 “현대 음악을 좋아하긴 하는데 앞으로는 고전적인 작품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슈만,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를 순서대로 언급했다.
‘음반의 여왕’ 답게 지금도 두 개의 앨범을 작업 중이다. 7월 말에 완성되는 음반은 카를 골트마르크의 협주곡과 시벨리우스의 소품을 담는다. 골트마르크는 시벨리우스의 스승이다. “1년 전에 녹음을 시작한 음악이었는데 이번에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게 되면서 우연히 겹쳤다”고 했다.
박수예는 “계속 듣고 싶어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음악으로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행복감을 주는 연주를 하고 싶다.” 그는 11월 서울 한남동의 사운즈S에서 독주회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