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기능마비 위협하는 국회의 직무유기

2024-10-16

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은 국가기관의 구성과 활동의 대원칙이다. 그러나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넘어 상호협력과 분업의 효율성도 추구하는 원리다. 삼권분립을 통해 국가기관들이 서로 견제하기 바빠 국가 기능 및 작용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이란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와 유사하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둘을 묶어 놓지만 서로 호흡을 맞춰 결승점을 향해 가야 한다. 국회는 헌법재판관 3명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만, 헌법재판소(헌재)는 국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로 하는 위헌법률 심판권 등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상호견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국회, 재판관 3인 후임 추천 안해

재판관 선출 늦어져 헌재 불안정

국회, 헌재 기능 정상화에 협조를

그런데 상호협력과 분업의 효율성은 어디 있는가. 예컨대 헌재가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그 법률조항의 개선을 국회에 촉구하는 것은 위헌성을 지적하면서도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 국회에 법률을 개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즉, 위헌판단의 전문성은 헌재에 있으나, 여러 현실적 조건을 고려한 입법의 전문성은 국회에 있으므로 양자의 역할을 적절하게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헌법재판관 3명의 선출을 지체해 헌재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견제와 균형도 아니고 분업적 효율성도 아니다.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무책임한 처사다. 헌법에 따르면 9인으로 구성된 헌재의 주요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헌재 재판관 7인 이상이 출석해야 심리를 열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헌재 기능마비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식한 재판관 9인 전원이 헌재가 심리를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 놓았다. 그러나 임기가 만료되는 재판관이 내년에 줄줄이 나올 예정이라 국회의 재판관 선출이 계속 늦어진다면 재판관 6인 체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행 헌법의 특징 중 하나가 헌법재판소 도입이다. 지난 36년 동안 헌재는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 보호를 위해 눈부신 성과를 보여줬다. 국제그룹 해체 위헌 확인, 유신헌법 체제의 긴급조치 위헌 확인, 호주제 폐지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헌재는 헌법 수호를 위해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결정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법률안 날치기 통과 위헌 확인 등 수많은 결정을 통해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헌재가 국회에 의해 기능이 마비되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국민의 정치 불신이 극도로 높지만, 헌재는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 기관 중 하나다. 그런데 국회가 헌재를 코마(Coma) 상태에 빠뜨리는 것에 동의할 국민이 있을까.

국회 추천 몫의 헌재 재판관 3인의 임기가 17일 만료됐다. 지금 당장 선출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인사청문회 등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할 때 상당 기간 재판관 3인의 공석에 따른 헌재의 기능장애는 피할 수 없다. 오죽하면 헌재가 재판관 3인의 임기만료 직전에 가처분 인용 결정을 통해 심리 정족수를 ‘7인 이상’에서 ‘6인 이상’으로 바꿨을까. 오죽했으면 성향이 다른 재판관 9인이 만장일치로 결정했겠나.

여야는 서로 재판관을 더 많이 추천하려고 싸운다. 하지만 국회가 재판관 추천을 미뤄야 할 시급하고 절박한 중대 이유가 있나. 그런 사유가 보이지 않기에 국회, 특히 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의도적으로 헌재 기능을 마비시켜 탄핵심판 등의 결정을 늦추려 한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이는 국회가 국민의 인권과 국가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삼권분립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로도 여야 갈등과 정쟁은 있었고,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의 극단적 정치 진영 갈등에서 비롯된 헌재 기능마비 사태는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극한 갈등으로 공멸을 초래하는 파괴적 권한 오남용이다. 이제라도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국회는 조속히 헌재 기능이 정상화되도록 재판관 3인의 추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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