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걸으려 사람들 줄선다, 엄홍길에 묻힌 ‘3등’의 행복

2025-02-24

한왕용(59) 대장은 전 세계에서 열한 번째로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산악인이다. 히말라야 등반이 시작된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5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엄홍길(2000년)·박영석(2001년 완등) 대장에 이은 세 번째 완등(2003년). 2등도 기억하지 않는 세상에서 3등은 그렇게 잊혀 갔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을 하는 동안 남다른 이력을 갖췄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4개 봉우리를 완등하면서 같이 등반한 동료·등반 가이드(셰르파)를 잃어본 경험이 없다. 그뿐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8000m에서 수차례 다른 원정대의 대원을 부축해 내려오기도 했다. 드문 경우다. 그래서 산악계는 그를 ‘휴머니스트’로 기억한다. 그는 14좌 완등 후 다시 8000m 산을 찾았다. 자신이 버리고 온 쓰레기를 줍기 위해 산에 갔다. 스스로 청소부를 자처한 것이다. 이도 드문 경우다.

30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한 아웃도어 회사에서 일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후원을 받는 경우는 많지만, 직원으로 들어가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뜻하지 않게 40대 중반에 그만두게 되자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차렸다. 14좌 완등자가 트레킹 가이드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산에 다닌 경험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지금이 살면서 가장 편안한 때”라고 했다. 먼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트레킹 전문 여행사는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손님이 알아서 모여든다. 대부분 “한왕용과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또 10년 이상 1인 기업을 운영한 노하우가 축적돼 나가는 비용이 많지 않다. 여행업계의 강소기업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시간 날 때마다 아내와 함께 걷는다. 계절 따라 산을 오르기도 하고,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해외 트레킹에 나선다. 걷기를 취미로 삼는 부부가 많을 듯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건강해야 하고, 같이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부부가 걷기를 좋아하지만, 각각 따로 걷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그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덕업일치’를 이룬 데다 ‘부부걷기’를 하고 있어서다. 경제적 자립까진 아니어도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 틈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걷는 것. 그에게 행복을 주는 두 가지다. 그의 아내는 대학 산악부 출신으로 최근까지 간호사로 일하다 퇴직했다.

한국의 14좌 완등 산악인

전 세계적으로 약 50명의 산악인이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모두 완등했다. 최초는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81)로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6년에 걸쳐 올랐다. 가장 최근엔 지난해 네팔 산악인 니마 린지(19)가 최연소 기록으로 완등에 성공했다. 한국은 7명의 완등자를 배출했다. 2000년 엄홍길(65)을 시작으로 박영석(2001년), 한왕용(2003년), 김재수(2011년), 김창호(2013년), 김미곤(2018년), 김홍빈(2021년)이 있다. 김홍빈 이후 14좌 완등을 목표로 하는 이는 없다. 여성 산악인 중 오은선이 14개 봉우리를 완등(2010년)했다고 주장했지만, 칸첸중가 등정 시비가 일었다. 이후 대한산악연맹이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완등한 7명 중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김창호(2018년 구르자히말)·김홍빈(2021년 브로드피크) 대장은 등반 중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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