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아주 보통의 하루

2025-02-26

전주에서의 고등학교 시절, 기전여고 뒤 도토리골 등 여러 하숙집 중 특히 중노송동 하숙집을 잊을 수 없는 건 그곳에서 난생처음 생생하게 직관한 죽음 때문이다. 1학년 여름 어느 토요일, 난 한방을 쓰던 3학년 형의 예지력(!)으로, RCY에서 인공호흡 교습을 받고 와 꽤 피곤한 터라 초저녁에 곯아떨어졌다. 새벽녘, 갑자기 안방에서 하숙집 아주머니의 어린 딸이 울면서 다급하게 엄마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왜 그래? 엄마!”

깜짝 놀라 형과 함께 벌떡 일어나 달려가 보니 아주머니가 주무시다가 갑자기 서너 번 “크억!”하시더니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번갈아 가며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하지만 응급차가 올 때까지 아주머니의 호흡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우린 교회에서 목사님으로부터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아울러 성도를 살리려 애써준 두 하숙생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1년 11월. 느닷없이 고등학교 같은 기수 동문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기가 날 찾고 있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냐는 것. 이름을 물어보니 나도 그동안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포기했던 친구였다. 우린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는데, 각각 지방과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헤어진 뒤 속절없이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망설일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얼른 친구 전화번호를 받아 당장 통화를 할 수밖에.

정말 감격의 해후였다. 우린 내내 달뜬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말쯤 부부끼리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통화를 끝냈다. 내가 친구를 찾지 못한 것은 일단 내 착각 때문이었다. 난 친구가 한의학과에 들어간 줄 알고 인터넷에서 전국에 있는 친구 이름의 한의원만 찾았는데, 사실 친구는 의대에 진학해서 졸업 후 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친구는 나처럼 고등학교 동문회 활동에 소극적인지라 동문 주소록에 연락처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러구러 크리스마스가 지난 2021년 12월 26일 이러다가는 해를 넘기겠다는 조급함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 11월에 연락했는데 어느새 연말이야. 연말연시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라. 올해 너와 연락된 게 내겐 정말 가장 큰 선물이었어.” 하지만 2주가 되도록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해를 넘겨 2022년 1월 초에 이번에는 문자를 보냈다. “잘 지냈어? 카톡을 안 보네? 설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역시 아무런 답이 없었다. 며칠 후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막 동문회장에게 연락해보려는 참에 카톡으로 청천벽력 같은 친구의 본인상 부고가 날아왔다.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당장 인천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며 통곡했다. 친구 동생을 통해 사정을 들어 보니, 친구는 처음엔 혼자 의원을 운영해오다가 몇 년 전 뜻이 맞는 지인들과 큰 병원을 설립해서 이제 막 편안하게 살만하니 갑자기 쓰러져 홀연히 먼 길을 떠나버렸다.

올 2월은 다섯 번이나 지인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나는 부고장을 받을 때마다 불현듯 내 뇌리에 깊이 아로새겨있던 위의 두 죽음이 떠오르며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곤 한다. 그렇다고 허망해하며 절망하는 건 아니다. 원래 허망한 삶을 내가 어쩌겠는가? 알베르 카뮈의 책 『시지프 신화』의 시지프처럼,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처럼 ‘아주 보통의 하루’에 감사하며 살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김원익 세계신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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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하숙집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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