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정치, 금융 발목이나 잡지 마라

2025-01-19

“최악의 경우 뱅크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리빌딩 파이낸스 2025’ 기획 기사 취재를 위해 지난해 12월 찾은 국내 한 시중은행의 동남아 지점 관계자는 ‘만약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정확한 국내 사정을 알기 어려운 현지 고객들 사이에서 ‘한국의 은행은 위험하다’는 불신이 삽시간에 퍼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가정으로만 끝나 천만다행”이라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정치 불안에 금융권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원화 가격의 추락은 금융회사의 위험 자산 비중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정말 재무 상황이 괜찮은 것이냐’하고 의심을 거두지 않는 외국인 투자가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해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금융권 해외 거점에 ‘한국은 못 믿을 나라’라는 인식은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힘겹게 쌓은 인지도와 신뢰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보 없이 치닫는 정치 갈등에서 느닷없이 튀어 나온 파편에 회생 불능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는 금융 산업에 정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 금융의 글로벌 시장 개척 현실을 보면 정치가 리스크나 조장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외국 현장에서 직접 취재를 하며 느낀 점은 K금융이 나아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간 성과도 있었다. 은행권의 해외 자산은 외환위기 당시인 2001년 226억 달러에서 2022년 2031억 달러로 9배 가까이 양적 성장을 거뒀다. 그러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금융사 관계자들은 한국 금융이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여전히 도전자 입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링 위에서 강한 펀치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현지 당국의 보호를 받는 현지 금융사, 해외 사업 경력이 100년 이상인 글로벌 금융회사들이다. 우리와 체급부터 다르다. “정부와 합심해서 싸워도 모자를 판”이라는 한 해외 법인장의 말은 그래서 절실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해외 진출을 통한 새 먹거리 확보는 금융권이 국내 시장이라는 우물 안에서 편하게 이자 장사나 하며 돈을 버는 구조를 깨기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하는 과업이다. 정치가 이를 돕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발목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기대는 난망하다. 정권마다 정책 이름만 바꿔가며 금융권에 취약 계층을 지원할 재원을 내놓으라고 되풀이하는 것이 한 예다. 정치야말로 금융의 새 성장 동력 창출이라는 과제는 외면한 채 금융사 돈으로 생색이나 내는 손쉬운 방식에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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