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위한 인생역전 무대

초등학교 4학년인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출한 건 1974년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서 가출한 아이는 머슴, 이발소 보조,
양복점 보조, 장갑공장 공원, 신문 배달 등으로 살아내야만 했다.
살아내면서도 아이는 가수가 되고픈 꿈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풍파를 겪은 아이의 본명은 김덕희,
가수로 데뷔할 당시의 예명은 강태웅이었다.
그 아이는 열 살 때부터 꾼 가수의 꿈을 대체 어떻게 이뤘을까?
“양복점 보조일 때 형님의 여자친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어요.
링컨 대통령의 전기였는데 그것을 보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김학송 작곡가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가 오디션을 봤는데
저더러 재능이 있으니 잘 갈고 닦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가수가 돼도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현실 인식을 했죠.
그래서 야학을 찾아갔더니 초등학교 졸업 이상만 받아준다더라고요.
보름간 선생을 졸랐죠. 공부하고 싶다는데 왜 안 시켜주냐고 하면서요.”
결국 공부에 대한 열정에 야학 선생은 덕희를 받아줬다.
“새벽엔 신문 배달, 낮엔 양복점에서 일하면서 2년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했어요.
이후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려 명지전문대학교 작곡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2001년에야 정식 앨범을 홀로 만들어 냈다.
그렇게 탄생한 1집 ‘이별하지 않은 이별’,
서른일곱에야 이룬 이 앨범은 열 살짜리 아이가 꾼 바로 그 꿈이었다.
2002년엔 SBS '인생 대역전’의 주제곡인 ‘Fighting’을 그가 만들었다.
주제곡은 그가 걸어온 삶 딱 그대로였다.
이후 가수 강태웅은 다시금 그의 본명 김덕희로 돌아왔다.
2006년 트로트 앨범 ‘콩콩콩’을 만들면서였다.
그리고 2019년 유튜브에 음악 채널인 GBS TV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이는 오롯이 후배들에게 노래할 무대와 음원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무대에 한 번 서기가 얼마나 힘든 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