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이 정치권과 소액주주들의 자사주 소각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주가 부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룹 상장사 중 가장 많은 자사주를 보유한 롯데지주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서 자사주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4일 업계 등에 따르면 고정욱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사장)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사주 소각 관련 질의에 대해 "일정 시간을 갖고 소각하는 것이 좋다"고 답변했다. 다만 당시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롯데지주는 현재 전체 지분의 27.5%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주요 지주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무재표상 자산 가치를 반영해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0을 밑돌고 있다"며 "재무적으로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주주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자사주 활용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며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 요구는 정치권뿐 아니라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도 확산 중이다. 지난 9월부터는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를 중심으로 자사주 전량 소각과 지배구조 개선, 경영진 보수 개편 등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본격화됐다.
소액주주연대는 롯데지주 지분 0.84%를 확보했으며 1% 이상으로 올라설 경우 검사인 선임, 주주대표소송 등 법적 대응도 가능해진다.
소액주주연대는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면 결국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롯데지주는 자사주를 즉각 전량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은 단순한 결단만으로 실행되기 어렵다. 지배구조상 일본 롯데홀딩스와 호텔롯데, 롯데알미늄 등 복잡한 주주 구조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지주 직접 보유 지분은 13.68%에 불과하고 일본 롯데홀딩스 지배 하에 있는 호텔롯데(11.09%)와 롯데알미늄(5.07%)의 영향력이 크다.
더욱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주주는 광윤사(28.14%)이며 광윤사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50.28%)이다. 신동주 회장은 여전히 롯데그룹 경영권 복귀를 노리고 있어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자사주를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열사를 통한 자사주 분할 매입 역시 정치권과 시장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롯데지주는 자사주 일부를 계열사인 롯데물산에 매각했는데 당시 매각 후 소액주주 지분율은 2.2% 하락하고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6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기형 의원은 "이런 식의 거래는 결과적으로 오너 일가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15% 안팎의 자사주 추가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점에서, 주주충실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자사주를 활용해 EB(교환사채)를 발행하는 방식도 거론되지만 이 역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최연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주주 이익을 위해 자사주를 시가 이하에 처분하는 건 명백한 편법"이라며 "상법상 주주 평등 원칙에 반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이와 맞물려 롯데지주의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롯데지주 측은 "앞서 자사주 15%는 계열사 매각 방식으로 처분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소각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기존 보유분은 시간을 두고 결정하되, 향후 신규 취득 자사주는 소각이 원칙이라는 내부 방침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