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라" 해도 손사래…소리없이 움직이는 실세총리, 왜

2025-10-09

# 지난 7월 취임 직후 김민석 국무총리는 국무조정실에 한국 경제 동향 보고서 작성을 주문했다. 국조실이 마련한 이 대외비 보고서는 “재정 건전성 도그마에 빠져 경기 악순환을 방치했다”며 기획재정부를 정조준했다. 직전 정부까지 통상 기재부 출신이 국조실장 자리를 독점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기재부 내부에선 이를 “총리실 중심의 권력 재편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 서울시장 차출설이 나도는 김 총리가 이번 추석 연휴 때 찾은 건 정작 호남이었다. 지난 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벼깨씨무늬병’으로 인한 쌀농사 현장 피해 조사는 건너뛴 채 발병 원인 정밀조사에 착수하자 “현장은 와보지도 않고 탁상행정을 한다”고 농민들이 반발한 게 이유였다. 김 총리는 “경호 인력 포함 10명 이내로 인원을 최소화해 현장을 찾자”고 한 뒤 7일부터 1박 2일간 전남·전북 일대를 찾았다. 김 총리는 8일 페이스북에 “지루한 말싸움보다 생산적 정치를 위해선 현장이 중요하다”는 소회를 남겼다.

10일 취임 100일을 맞는 김민석 국무총리의 행보를 압축한 두 장면이다. 여권에선 김 총리를 향해 “매머드급 총리실을 운영하는 명실상부 국정 2인자”란 시선과 “묵묵히 민생만 챙겨 의외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시선이 교차한다.

우선 총리실의 전격적 개편은 ‘실세 총리설’을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다. 당·정 협의 끝에 지난달 30일 정부조직법이 국무회의에서 통과하면서 내년 1월 2일부터 기획재정부의 기존 예산 기능이 총리실 산하에 신설되는 기획예산처로 이관된다. 또 지난 1일부터 통계청이 국가데이터처로 승격해 총리실 직속에 편입됐다. 같은 날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이 공식 출범하며 검찰개혁의 주도권마저 여당에서 정부로 가져왔다.

이런 권한 몰아주기는 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검찰개혁 후속 입법 주도권을 놓고 당·정간 신경전이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직접 지난달 취임 100일 회견에서 “정부가 주도해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아주 전문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김 총리의 손을 들었다.

이 대통령은 김 총리 취임 직후인 7월 7일부터 매주 월요일 단독 주례회동을 열고 김 총리와 머리를 맞댔다. 여기서 나온 이 대통령의 주문을 김 총리가 직접 실행에 옮기는 식이었다. 특히 김 총리는 취임 100일인 10일에도 경북 경주로 여섯번째 현장 시찰을 떠나는 등 이 대통령이 당부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12·3 계엄 이후 APEC 준비가 사실상 방치돼 이를 완비하는 게 최대 당면 과제여 왔다”고 전했다.

정치적 갈등엔 중재자를 자처하는 장면도 있었다. 검찰개혁 주도권을 둘러싼 당·정 간 충돌에 이어 특검법 연장 문제를 놓고 ‘정청래-김병기’ 여당 투톱 갈등이 불거지자 지난달 14일 당·정·대 비공개 만찬을 소집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 100일간 “총리 개인의 존재감은 정작 옅었다”는 평가도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 총리가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일부러 절제하며 대통령을 모시는 옛날 정치 문법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대통령 본인이 워커홀릭이니 이를 뒷받침하는 데 에너지가 다 들어가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모진이 “좀 더 메시지를 선명히 내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해도 김 총리는 “적어도 집권 1년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시대를 여는 참모장이 되겠다”는 취임 일성을 지키겠다는 의미다.

김 총리 주변은 내년 서울시장 또는 당 대표 차출설 등에 선을 긋고 있다. 김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18년의 야인 생활을 거치며 김 총리는 ‘때’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단 걸 깨쳤다”며 “총리직을 수용했을 때부터 제1원칙은 ‘정치인 김민석이 아니라 오직 총리 김민석으로 역할한다’였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결국 때를 만들고 길을 열어주는 것은 이 대통령”이란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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