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정보기술 대기업) 거물들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일각에선 실제 이들의 영향력이 "과대 평가돼 있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사이에 트럼프와 유착하기 위한 인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빅테크 수장들은 취임식 날 아침부터 트럼프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분주했다. 이들은 이날 첫 일정인 워싱턴DC의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이어 연방의회 의사당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도 트럼프와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트럼프가 신설한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JD 밴스 부통령의 아내 우샤 밴스 부통령 바로 옆자리에 자리했다. 그 옆으로 순다르 피차이(구글)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메타) 등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21일 관련 기사에서 "이런 빅테크 수장들의 역할이 과대 평가됐다"고 전했다. 아마존·메타·테슬라의 주식 가치의 합이 미국 전체 상장 주식의 1/10을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이들 기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면서다. 트럼프 입장에선 그의 지지층인 자동차 산업 등 전통적인 제조업의 노동자들을 무시할 순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취임사에서 '기술(technology)' 관련 언급이 없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31분간 취임 연설을 했는데, 주로 불법 이민과 에너지 확대, 제조업 부흥에 초점을 맞췄다. 이와 관련, "트럼프의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 Great Again)' 내 빅테크 억만장자들에 대한 반발 여론을 고려했다"는 풀이도 나왔다.
빅테크 간 겹치는 사업 분야도 많아 앞으로 이들의 이해 관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어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은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독주 중인 민간 우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또 머스크의 X(옛 트위터)와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은 소셜미디어(SNS) 사업에서, 아마존과 메타는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특히 트럼프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이들 빅테크 간 경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어떤 대통령보다도 거래적인 트럼프는 인맥주의와 사적 거래의 위험이 크다"면서도 "미국의 기술산업과 경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두제(oligarchy)'로 굳어지기엔 너무 통제하기 어렵고 역동적"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빅테크에 공동통치권 줄 것"
사실 트럼프와 빅테크의 유착을 가장 우려한 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5일 고별 연설에서 "오늘날 미국에서 소수의 억만장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과두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군산복합체의 위협을 경고한 것을 거론하면서 오늘날 유사한 방식으로 '기술산업복합체'의 부상이 우려된다면서였다.
머스크, 베이조스, 저버커그 세 명의 자산만 합쳐도 약 9110억 달러(약 1309조)에 이르는 만큼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거머쥔 이들이 권력과 결합하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나라도 빅테크 수장들의 이런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8일 안드레아스 미카엘리스 미국 주재 독일대사는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에서 "(트럼프 2기에서)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과 견제와 균형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빅테크가 공동 통치권을 부여받을 것"이라고 적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