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담으로라도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하곤 한다. 다소 엄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에게 가치관과 신념이 중요하듯 기업에는 어떨까?
기업은 영어로 'Corporate'이다. 이 단어를 한자어로 풀어보면 '법인(法人)'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즉, 법적으로 인간과 같은 자격을 부여받아 특정 목적을 위해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이는 기업이 단순한 경제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전만 해도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기업의 목적도 변했다. 이후에는 '이해관계자의 이익 극대화'로,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최근의 정의야말로 기업의 존재 이유를 가장 정확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윤 추구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은 결국, '먹기 위해 사는 삶'과 다를 바가 없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개개인이 모여 법인을 형성하는 것처럼, 기업 역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이윤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불과하다.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체다.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하듯, 기업 또한 같은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복잡한 재무적 분석이나 전략적 접근을 넘어, 기업 운영의 근본적인 원칙은 단순하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이를 잘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개념은 엡손이 집중하고 있는 'ESG' 가치로 확장을 해볼 수 있다.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외쳐 대고 재무적 관점, 전략적 관점 등 복잡하게 접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인 방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엡손은 ESG가 글로벌 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기 훨씬 이전인 1993년, 세계 최초로 전 공정에서 프레온가스를 철폐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타 기업들과 공유하여 환경적 재앙을 막는 데 기여했다. 2023년에는 RE100에 가입한 지 불과 2년 9개월 만에 전 세계 사업장에서 RE100을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단기적인 이윤에만 집착하는 기업은 사회로부터 그리고 내부 직원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없고 결국 지속 가능성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은 더 많은 신뢰를 얻고 장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고객뿐만 아니라 투자자, 직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 창출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ESG 경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업이 실천해야 할 본질적 사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업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해야 한다.
김대연 한국엡손 상무 dykim2@eps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