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디킨스가 “그것은 가장 좋은 시절이자 가장 나쁜 시절이었다”고 쓴 건 프랑스 혁명기였다. 누군가는 돈 잔치를 벌이고, 누군가는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오늘의 금융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경신하는 동안, 다수의 국민은 고금리로 삶이 휘청이는 고통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은행권은 ‘공공의 적’으로 지목됐다. 국민은 고금리로 신음하는데 이자 장사로 떼돈을 번 은행들이 ‘돈 잔치’를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한때 비판 여론에 눈치를 보던 은행들은, 그러나 지금도 잔치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의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은 지난해 직원들에게 많게는 7억원대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했고, 평균 연봉은 약 1억2000만원에 이른다. 이는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확대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올린 덕분이다.
1분기도 은행 ‘이자이익’ 최고치
부동산 대출보다 기업 지원해야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기준금리를 세 차례(0.75%포인트) 인하했다. 국민들은 대출금리 인하를 기대했지만, 은행들은 예금금리부터 먼저 내렸다. 올 1분기에도 국내 은행은 실적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 속에서도 막대한 이자이익 증가가 실적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이 가산금리 인하를 여러 차례 권유했음에도 대출금리 인하 폭은 미미했다. 지난 2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 평균은 1.3%포인트였다. 이는 은행연합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22년 7월 이후 가장 큰 격차다.
물론 은행은 민간 기업이고, 이윤 추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복되는 비판과 금융당국의 일관성 없는 금리 정책에 억울함을 느낄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은행은 단순한 이윤기관이 아닌, 사회적 기능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들을 살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은행이 사회적 위기에서 과도한 이윤 추구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의 저자 임수강 금융평론가는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가 정체된 상황에서 은행 이익만 계속 늘어난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구조”라고 경고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은행의 이익은 본래 생산 부문(기업 등)을 지원한 대가로 발생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가 함께 늘어난다면 이익 증대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물경제는 위축되는데 은행만 이익을 극대화한다면 이는 오히려 은행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억누르는 방증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은행들이 생산적 기업보다 부동산 담보대출 등 비생산적 영역에 자금을 집중할 경우, 사회 전체의 금융자원이 낭비되고 자산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담보가 확실한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수익을 올리는 은행이 서민대출이나 리스크 있는 기업대출을 외면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서정의 전 한국은행 국장은 “한국의 특이한 금융시스템 때문에 국민이 지나치게 높은 금융비용을 떠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는 각각 1만 개 이상의 은행이 있지만, 한국은 주요 5~6개 은행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높은 진입장벽과 독점 구조 속에서, 제도권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2·3금융권이나 사채로 몰리고 있다. 서 전 국장은 이로 인한 금융비용이 연간 20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기업들은 ‘돈맥경화’로 4월 위기설에 시달린다.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 금융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상생금융’과 ‘은행 개혁’이라는 화두가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금융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