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과 다습한 가을을 지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폭염에 이어진 가을장마로 과일·채소의 작황이 나쁘고 병충해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의 위기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 현상이다. 최근 수년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올리브 수확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급등했고, 일본과 인도에서는 무더위와 집중호우로 쌀 수확량이 급감해서 농가와 소비자 모두 큰 피해를 보았다. 기후재난이 식량안보의 위협을 초래한 것이다.
“수십억 명 기아로 고통받을 것”
노벨상 수상자 등 150명 경고
유전자 변형·교정 규제 풀고
상용화 실패 예산 낭비 막아야

2050년 세계 인구 97억 명
기후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온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고치를 가파르게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혁명 이전에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올해 425ppm에 이르렀고 최근 들어 매년 3~4ppm씩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온실 효과로 해양과 육지가 데워져서 기온이 상승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기온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올여름과 가을이 우리가 경험한 가장 무더운 계절이면서 향후 경험할 수 없는 가장 시원한 계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150여 명의 노벨상 및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 수상자들은 기후 재난으로 인한 식량 불안정이 시급한 국제적 문제임을 경고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업 연구개발 ‘문샷(moonshot)’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 명이 늘어나 97억 명을 넘게 되는데, 기후 변화로 식량 증산이 어려워져서 수십억 명이 기아에 고통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난 세기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된 아폴로 프로젝트와 같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문샷’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더위·가뭄 등 기후 변화에 강한 작물 품종, 광합성 효율을 높인 곡물과 질소 비료를 적게 사용해도 되는 작물 개발 등을 촉구했다.
20세기를 돌아보면 미국이 주도해 전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와 군부, 과학자들이 힘을 모아 짧은 기간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사례로서, 일본 제국주의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우주개발을 둘러 쌓고 옛 소련과 경쟁을 벌여 승리한 냉전 시대의 대형 국책사업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위기인 기후재난과 식량 불안정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세계가 더 이상 미국에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을 뿐 아니라 최근 유엔 총회에서 기후위기가 역사상 최대 사기극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탈탄소’ ‘탄소발자국’ 등 기후 관련 용어를 금지어로 지정했다. 미국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훼방꾼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의 경제·정치적 리더십과 영향력이 20세기 이후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세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길을 찾고 협력해야 한다.
전통 육종기술, 식량 부족 해결 못해
지난 6월 대통령 선거로 출범한 새 정부는 지난해 삭감된 연구개발 예산을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특히 12개 국가전략기술 분야를 선정해 향후 5년간 25조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인공지능·반도체·첨단로봇·양자와 함께 신약개발을 중심으로 한 첨단 바이오가 12개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와 인류가 당면한 최대 난제인 기후 재난에 대응하고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농업·기후 융합형 문샷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신약개발은 환자들을 위해 필요하지만, 식량안보는 모든 이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쉽다. 식량 안보를 위한 문샷 연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규제 개혁이다. 외부 유전자를 도입해 만든 유전자변형생물체(GMO)와 외부 유전자 도입 없이 유전자교정 기술로 자체 유전자 일부를 바꾼 유전자교정생물체(GEO)에 대한 제도적 정비 없이는 문샷 연구에 성공해도 성과로 이어질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통 육종기술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GMO·GEO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사실 육종도 어떤 유전자인지 모르지만 자체 유전자 변이를 초래하기 때문에 GEO와 구별되지 않는다. 미국·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들은 GEO를 기존 육종보다 빠르고 정밀한 기술로 보고 규제를 완화해 상용화를 촉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GEO를 GMO로 분류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 이대로 가면 GEO를 GMO로 규제하지 않는 해외 여러 나라들과의 통상 마찰도 불가피하다. 과거 GMO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상용화 품종 하나 내지 못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기후재난은 이미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으며, 향후 수십 년간 상황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담한 문샷형 연구 투자와 더불어 연구성과의 신속한 현장 확산을 위한 규제·제도 개선, 그리고 국제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 지금의 선택이 우리의 노후와 자식들의 생존과 안녕을 좌우할 것이다.
김진수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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