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이건용 개인전, 리안갤러리

2024-12-16

“화면 속 형상은 논리·설계 아닌 신체적 행위 결과”

신체를 예술의 도구로만 인식

예술엔 소통이 이론 보다 우위

‘신체드로잉’은 고정관념 타파

캔버스 옆·뒤 또는 등지고 그려

역동성 부여한 겹하트 연작 소개

하트가 가진 소통의 기호에 초점

제네바·뉴욕 등 세계 곳곳서 전시

뉴욕서 ‘달팽이 걸음’ 시연 주목

이건용(82) 작가가 “나의 모든 작품은 ‘신체드로잉’ 이었다”고 말할 때,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개는 작가의 신체적인 행위보다 그림의 내용을 부각하기 마련인데, 그는 신체의 행위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은 그의 예술에서 독자성을 인정받는 부분이다. 그는 캔버스 옆이나 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아예 캔버스를 등지고 그림을 그린다. 화면 속 형상이 고도의 논리나 설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신체적 행위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형상 자체에서 의미를 투영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논리로 그의 신체적인 행위는 그의 그림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의 ‘신체드로잉’이 대구 리안갤러리에 걸렸다. 전시에는 그의 ‘신체드로잉(Bodyscape)’ 시리즈 20여점이 걸렸다. 최근 완성된 하트 신작과 미공개 소품도 함께 전시된다.

이건용은 ‘신체드로잉’으로 회화, 설치,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확고하고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그리지 않는 특유의 제작 방식으로 한국 미술사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 실천적인 행위가 신체드로잉이었다. 그의 ‘신체드로잉’은 신체 움직임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가 작품에서 신체드로잉을 그림의 핵심 요소로 두는 속내는 ‘신체적 행위의 강조’에 있다.

그의 ‘신체드로잉’이 대내외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73년 파리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여했을 때다. 당시 그는 작품 ‘신체항’을 출품했다. 나무의 뿌리와 나무가 뿌리를 내린 장소의 흙을 발췌해서 전시장에 설치했다. 지구를 거대한 하나의 신체로 보고, 신체의 일부인 자연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다. 신체와 자연의 역학관계를 ‘신체항’으로 서술한 그의 속마음은 “이것도 예술이라는 항변”이었다. 고착화된 예술의 정의에 균열을 내기 위함이었고, 이는 결국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더 큰 목적으로 연결됐다.

작품 ‘달팽이 걸음’은 그가 꼽는 대표작이다. 1979년 상파울레 비엔날레 프레스 오프닝때 선보인 퍼포먼스다. 쭈그리고 앉아 좌우로 선을 그으며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는 퍼포먼스였다. 그의 선을 그으면 앞으로 나아가면 발걸음마다 그어놓았던 선에 흔적이 남는 퍼포먼스였다. 그가 “선을 긋는 동시에 지우는 행위가 결합된 퍼포먼스였다”고 회상했다. “’달팽이 걸음‘은 끊임없이 긋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회화의 본질과 맞닿은 작품이었으며, 회화의 바깥에서 사유한 결실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신체와 장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지속해왔다.

신체를 예술의 매개체로 인식한 배경은 그의 가정사와 무관치 않다. 그의 부친은 교회 목사였고,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세계에 내려온 방식에 주목했다. 예수는 인간과 같은 몸으로 세상에 왔고, 인간과 같은 몸을 가졌기에 인간과의 긴밀화 대화와 소통이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이건용 역시 물질의 영역인 몸에 부여된 힘을 믿었고, 신체드로잉을 과감하게 작업에 접목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듯, 저 역시 저의 몸을 통해 예술의 소통력을 높이고 싶었어요.”

물질의 세계에서 몸은 소통을 위한 필수 도구다. 하지만 그는 몸 자체를 예술의 핵심에 두지는 않는다. 예수가 몸 자체보다 종교적인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듯, 그도 신체를 예술의 도구로만 인식했다. 물론 그의 의식이 향하는 곳은 물질 너머 정신의 차원에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 너머의 내용인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그가 예술적인 스승으로 책이나 학자들을 스승으로 삼은 결과다.

그의 부친은 책 1만권을 소장한 지독한 독서가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그도 초등학교 때부터 장자와 노자에 심취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실존주의와 현상학, 언어분석학까지 두루 섭렵했다. 중학생이었던 그가 대학에서 언어학회가 열리면 부친의 옷을 입고 학회에 참석하는 열성까지 보일 정도로 그는 언어학이나 철학, 인문학 등에 일찍 남다른 관심을 표했었다. “일찍부터 소통의 문제와 언어와 논리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가 일찍부터 언어학이나 철학 등의 학문들에 관심은 가진 것은 그것들이 ‘원활한 소통’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믿음에 있다. 그는 일찍부터 “미술이 어떻게 하면 대중과의 소통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다. 소통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 때 강렬하게 과제로 다가왔다. 미술대학 선배들에게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개똥철학이었다. 까마득한 선배들의 알 수 없는 개똥철학은 중학생이었던 그를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대학생들의 개똥철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술의 소통 부재를 경험한 중학교 시기부터 그는 소통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예술에서 소통이 이론보다 우위에 있음을 직감했고, 소통을 높이기 위한 방법론을 고뇌했다. 당시 그가 찾은 해결책이 “미술의 안이 아닌 미술의 바깥에서 풀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고정관념 타파였고, 그 실천이 ‘신체드로잉’이었다. 그의 ‘신체드로잉’은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한 실험들 중 하나였다.

“제가 미술의 바깥에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듯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바깥에서 속을 바라보면 더 넓은 시야로 속이 보이고, 이것은 곧 소통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작가의 신체 행위인 ‘신체드로잉’은 그가 미술의 난맥상이라고 느꼈던 소통력 제고를 위한 선택지였다. 그에게 신체적인 행위는 형식으로서의 행위가 아닌 내용으로서의 고정관념 타파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미술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에게 미술의 바깥에서 깨달은 ‘신체드로잉’은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론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남다른 창의성으로 미술의 경계를 허문다”는 내용적인 측면에 있었다. 이는 곧 “화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도 일맥상통했다.

고도의 이론으로 무장한 ‘신체드로잉’에 도달하기까지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부친의 서재 속 인문학서와 철학서였다. 물론 언어학회나 신학 관련 학회들을 찾아다니며 깨달은 바도 작용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문화원을 찾아 미술잡지를 살피는 것에도 열심이었던 결과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로 축적된 정보와 지식들은 그의 미술이 개념미술로 정립되는 자양분으로 기능했다.

그의 전매특허가 된 캔버스 옆이나 뒤, 캔버스를 등지고 그리는 방식은 그의 키와 양팔과 다리의 길이에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캔버스에서 그의 제한된 신체 행위는 캔버스라는 평면을 지각해 가는 과정들이며, 화면 속 기록들은 그 일련의 행위들의 결과다. 자연에 대한 묘사나 감정 표출과는 출발부터 다르다는 의미다. 그가 “필연적인 논리에 의한 서술의 기록”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겹하트’ 연작이 새롭게 소개됐다. 하트 그림의 변형된 버전이다. 팔 길이를 달리해 크고 작은 하트가 여러 겹 포개져 역동성을 부여한 작품이다. 뉴욕 등을 오가며 퍼포먼스 및 왕성한 작업 활동을 하던 작가가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쉰 이후, 올해 새롭게 제작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단일한 하트로 구성된 기존의 하트 연작과 달리 신작에는 작은 하트가 여러 개 포개져 있다. 그래서 ‘겹하트’라는 애칭이 붙었다. 단일 하트가 좌우 대칭에 의한 균형미에 집중했다면, 변형 하트는 비대칭에 의한 자유분방함과 리듬감이 특징이다. 하트는 의도하고 그렸다기보다 신체행위의 결과였는데, 하트처럼 보인다고 ‘하트’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신체의 움직임보다 하트가 가진 소통의 기호라는 의미와 상징성 강화에 초점을 두었어요.”

또 다른 전시작인 ‘신체드로잉 76-1’은 화면 뒤에서 팔을 내밀고 팔이 닿는 지점까지 선을 그어 완성했고, ‘신체드로잉 76-2’는 화면을 몸 뒤에 세운 후 팔을 뒤로 뻗으며 선을 그어 자연스럽게 몸의 형태와 팔의 궤적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른바 신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최근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08년 페이스 베이징, 2019년 페이스 서울, 2022년 전속 후 페이스 홍콩, 2024년 8월 페이스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 전시했다. 지난해 7월에는 전속 화랑인 세계 톱 페이스갤러리 뉴욕점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9월부터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순회전에 참여했다. 뉴욕 체류 중에는 길이 15m의 길쭉한 캔버스 위를 오리걸음으로 걷는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세 차례나 시연하며 주목받았다. 전시는 2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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