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유엔군 용사들이 묻힌 부산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는 첫 화면부터 독특하다. 한국어 외에 영어·프랑스어·튀르키예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유엔 공용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가지만 튀르키예어는 다소 의외다. 아무리 한국과 튀르키예가 ‘형제의 나라’라고 해도, 국내에서 튀르키예어가 영어·프랑어와 동등한 대접을 받는 기관은 몇 안 될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은 왜 그토록 튀르키예를 후하게 예우하는 것일까.

답은 유엔기념공원 안장자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총 2300여명의 유엔군 용사가 잠들어 있는 공원에서 국적으로 따져 영국인이 892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바로 튀르키예인(462명)이다. 공원에 묻힌 전사들 가운데 튀르키예인이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미국의 경우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간 연인원 180만명 가까운 병력을 한국에 보내 그중 3만6000여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정작 부산에서 영면에 든 미국인은 40명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같은 영어권 국가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영·미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며 “영국은 전통적으로 망자(亡者)가 생의 마지막을 어디에서 보냈는지가 중시되는 풍조인 반면 미국은 나라 밖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반드시 본국의 고향으로 운구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튀르키예의 경우 굳이 따지자면 미국보다 영국에 가까운 문화를 갖고 있는 듯하다.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연인원 2만1000여명의 병력을 한국에 보냈고 그중 1000명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튀르키예 참전용사가 462명이라니, 전사자의 대략 절반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에 남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관계자는 “전사자를 대우하는 튀르키예의 정서는 한국, 미국 등과는 다르다”며 “타국일지라도 전사한 곳에 묻히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지난 21일 서울 동작구 국유단에서 튀르키예군 추정 유해 4위 인수식이 엄수됐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것이 확실시되는 튀르키예군 장병 4명의 유해를 유엔군사령부가 국유단에 인계한 것이다. 살리 무랏 타메르 주한 튀르키예 대사, 이근원 국유단 단장 등이 행사에 참석해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이들은 추가 정밀 감식 등 남은 절차를 거쳐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전우들 곁에 묻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튀르키예에선 ‘전사한 장소가 곧 순교의 땅’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순교’라는 표현에 가슴이 숙연해진다.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우다 스러져 간 튀르키예 무명용사들의 명복을 빌고, 그들이 순교한 한국 땅에서 영면에 들길 기원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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