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고, 길고양이들조차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그런데 그 조용한 공원 끝자락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듯 한 한 얼굴과 마주친다. 철제 울타리 너머 반신상 하나. 동그랗게 말아 올린 머리와 단정한 눈매를 가진,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춘 듯한 그 얼굴.

조명희. 시인이자 소설가. 혁명가이자 유랑자. 그리고 ‘낯선 조국’에서 잊혔던 이름.
그는 1894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글로 옮겼다. 지식인으로서 침묵하지 않았고, 노동자와 농민의 언어를 문학의 세계로 끌어들인 최초의 작가였다. 소설 <낙동강>, 시 ‘땅’, ‘농민의 노래’ 등은 단지 문학작품이 아니라, 시대를 산 기록이자 고발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검열을 피할 수 없었고, 조선의 땅도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1920년대 후반, 조명희는 만주를 거쳐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당시 연해주는 수많은 한인 이주민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들던 유랑의 항구였다. 그는 이곳에서 ‘고려공산당’ 조직에 참여하며 문필 활동을 이어갔고, 후에 모스크바로 넘어가 고려문학의 토대를 다진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잔혹했다. 스탈린 치하, 1938년 대숙청 시기 반혁명 분자로 몰려 총살됐다. 시인은 사라졌고, 무덤조차 남지 않았다. 그의 조국은 침묵했고, 문학사에서도 긴 시간 동안 지워졌다.
2006년, 연해주의 한인 후손들과 러시아 문인들이 뜻을 모아 조명희문학비가 세워졌다. 그 자리는 극동연방대학교 구 캠퍼스 근처 악사콥스카야(Aksakovskaya) 거리 인근 공원. 나무들이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키는 고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학비는 철제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그 울타리는 단순한 보호 장치였을까, 아니면 시대를 견디며 침묵해온 존재에 대한 또 다른 경계였을까?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가 가슴 깊이 뭉근히 차올랐다. 마치 “시인은 아직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 울타리 너머로 들려오는 듯했다.
문학비 곁에는 한글과 러시아어로 된 작은 안내문이 있다. 그의 생애, 작품, 죽음-그러나 어떤 문장도 그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명희는 단지 삶과 죽음을 산 사람이 아니라, 지워졌던 시간 그 자체를 살아낸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조각상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문장의 행간에 살아 있다. 그의 글은 단순한 정치 선언문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피어난 언어의 꽃이었다.

바람이 울타리를 스친다. 그 소리는 마치 종소리 같다. 그 종은 과거의 침묵을 깨뜨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당신은, 다시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알고 있는가?”

나는 떠나기 전, 조심스럽게 울타리 너머로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 거리이지만, 마치 그 손끝에 그의 언어 하나가 와 닿은 듯한 착각. 시인은 거기 그대로 서 있다. 지워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침묵을 시로 바꾸는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공원. 그 철창 너머에는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의 이름은 조명희다. 잊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를 다시 불러야 한다.

권오기 여행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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