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대회와 마스터스[골프 트리비아]

2025-04-01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4월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는 발레로 텍사스 오픈이다. 이 대회는 일주일 뒤 열리는 마스터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초라하다. 그런데 세계 최고 권위 마스터스도 텍사스 오픈에 견줘 딱 하나 뒤지는 부분이 있다. ‘역사’다. 텍사스 오픈은 1922년 창설돼 100년을 훌쩍 넘었다. 또한 첫 회부터 지금까지 개최지 텍사스를 떠난 적이 없어 한 도시에서 열리는 가장 오래된 프로 골프대회로 꼽힌다.

디 오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회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1860년 10월 17일 스코틀랜드 에어셔의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서 첫 티샷을 날렸다. 그럼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대회는? 역시 영국에서 열리는 디 아마추어 챔피언십이다(디 오픈처럼 ‘The’를 그대로 썼다). 이 대회는 1885년 창설됐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4대 메이저 중 하나로 여겨졌다.

남자 아마추어 대회가 생기자 여자 대회 창설 움직임도 일었다. 영국 윔블던 골프클럽과 로열 리덤 앤 세인트 앤스 골프클럽의 몇몇 여성 회원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1893년 여자골프연맹을 결성한 뒤 같은 해 더 위민스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열었다. 가장 역사가 깊은 여자 골프대회라는 명성에 걸맞게 우승자에 대한 혜택도 크다. AIG 여자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오거스타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등 굵직한 대회 출전권을 준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회는 1895년 6월 시작된 캐나다 아마추어다. US 오픈과 US 아마추어도 1895년 창설됐지만 개최 날짜가 캐나다 아마추어보다 약 4개월 늦은 10월이었다. US 오픈은 북미 최고(最古) 골프대회 영예를 얻진 못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골프 테스트 무대로 통한다. 4대 메이저 중에서 상금 규모도 가장 크다. 2000년 US 오픈에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2위를 15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는데, 그때가 마침 ‘100회 대회’라 더욱 빛났다. 대회 장소도 페블비치였다. 기념적인 해, 특별한 우승자와 장소까지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다.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와 호주에도 일찍 골프가 보급됐다. 1893년에는 뉴질랜드 아마추어가 열렸고 이듬해에는 호주 아마추어가 창설됐다. 뉴질랜드 아마추어는 R&A가 주최하는 ‘더 시리즈’ 중 3개 대회(디 오픈, 디 아마추어, 더 위민스 아마추어)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남아프리카 오픈이 1903년 첫 스타트를 끊었다. 프로 선수 출전이 허용되는 오픈 대회로만 따지면 남아프리카 오픈은 디 오픈과 US 오픈에 이어 세 번째로 긴 역사를 가졌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렸지만 이 대회가 흑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건 1972년부터다.

남미 대륙 대회 중에선 1905년 창설된 아르헨티나 오픈이 첫손에 꼽힌다. 현재 PGA 콘페리 투어(2부 투어) 대회 중 하나로 열리고 있다. 올해엔 재미교포 저스틴 서가 우승하고 김성현이 준우승을 했다. 1906년 시작된 프랑스 오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내셔널 타이틀 대회다. 아시아에선 필리핀 오픈(1913년)의 역사가 가장 깊다. 김승학 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이 1973년 필리핀 오픈을 제패한 적이 있다. 이 대회 유일한 한국인 우승자다.

국내엔 아직 ‘100년 대회’가 없다.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는 1954년 창설된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58년 6월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이 첫 프로 대회 시작을 알렸다. 한국 오픈은 3개월 뒤인 같은 해 9월 첫 티샷을 날렸다.

역사가 짧다고 위축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스터스도 초창기엔 ‘신생’ 대회였지만 더 오랜 대회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 권위를 얻었다. 그린재킷, 패트런, 광고판 제로(0), 파3 콘테스트, 챔피언스 디너, 흰색 점프수트 캐디복 등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독특한 운영 방식 등을 통해서다.

반대로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대회에 머무는 대회도 있다. 관행만 답습하며 세월만 흘려보내면 먼지만 쌓인다. 오랜 전통에 혁신과 발상의 전환이 어우러질 때 마스터피스(명작)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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