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특별한 사파리 여행을 준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인 식물 바이러스가 대상이다. 식물 바이러스의 크기는 보통 나노미터 단위이다. 나노미터는 1㎜의 백만분의 1 크기이다. 눈으로 바이러스 입자를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다. 전자 현미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덩치가 크고 무거운 전자 현미경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법.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바이러스도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막대기 모양에서부터, 실 모양, 둥근 모양, 총알 모양에서부터 원형 입자 2개가 나란히 붙은 땅콩 모양도 있다. 바이러스 입자를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아쉽지만 우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에 걸린 식물의 외관상 변화를 관찰하는 간접적인 바이러스 사파리를 떠나야 한다.
중세 교회 유리를 장식했던 모자이크처럼 녹색 잎사귀의 일부가 탈색되면서 알록달록하게 변하는 식물을 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식물 바이러스의 이름에 ‘모자이크’가 많이 들어간 이유가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식물의 전형적인 증상이 바로 이와 같은 모자이크이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오늘날의 비트코인처럼 튤립 투기 열풍이 불었다. 단일 색상의 튤립 중 탈색된 듯 알록달록하게 색상이 변하는 개체가 나타났다. 그 희소성으로 인해 이들의 가격은 당시 노동자 평균 연봉의 2~3배에 달했다니 상상할 수도 없다. 훗날 이러한 꽃의 변색이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튤립 바이러스와는 달리 대부분의 식물 바이러스는 농작물의 상품성이나 수량을 떨어뜨린다. 벼나 옥수수에는 잎맥을 따라 줄무늬가 생겨나기도 하고, 식물체 전체가 심하게 위축되거나 노랗게 변하기도 한다. 잎이 검게 변하며 죽는 괴사 현상이나, 과일의 원형 반점, 잎맥 투명 증상 등 식물 바이러스로 인한 이상 증상은 다양하다.
농작물이 자라는 논이나 밭에서 이런 증상들이 보이면 우선은 바이러스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잎이나 꽃에 곤충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700여 종의 식물 바이러스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200여 종이 보고되어 있는데 곤충이 전염하는 식물 바이러스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먼저, 진딧물이 전염하는 식물 바이러스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 세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진딧물이 식물체를 옮겨 다니며 빨아먹을 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마치, 모기가 동물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의 병을 옮기듯이. 진딧물이 많이 붙어 있는 잎에 모자이크 증상이 보인다면 일단은 바이러스를 의심해야 한다.
꽃 속이나 잎에 눈으로 겨우 보일만한 1㎜ 내외의 작은 벌레(총채벌레)가 붙어 있으며, 잎에 달무리같이 커다란 반점이 생기고 식물체가 말라 간다면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를 의심해야 한다. 시설하우스에 많이 사는 ‘담배가루이’는 마치 하얀 꽃가루 같은데 이들은 ‘토마토황화잎말림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담배가루이가 바이러스를 전파한 토마토는 잎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돌돌 말린다.
식물 바이러스 사파리는 매우 피곤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친구들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사파리를 마치고자 한다. 야생동물 사파리에서도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낮에 자는 녀석들도 있고, 사람 눈앞에 나타나는 걸 꺼리는 녀석들도 있기에, 전체를 보기 위해선 여러 차례의 사파리가 필요하다.
다음 기회에 더 많은 바이러스를 찾아 사파리를 떠날 것을 기약해 본다. 혹시 농경지에서 위에서 말한 증상들을 발견했을 때, 국립농업과학원에 문의한다면 친절한 연구원들이 식물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자 현미경으로 직접 보여 줄지도 모를 일이다.
박진우 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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