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청해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하며 “국가의 미래는 더 이상 군사력이나 경제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 문화의 힘, 즉 문화력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드라마,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산업과 그 종사자들은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이끌고 있으며, 국가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이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일 대중문화 교류정책의 국가적 비전을 수립하고 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우리 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의 이면엔 심각한 위협도 공존한다. 바로 불법 콘텐츠 유통 범죄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사이버 저작권 침해 범죄는 총 3만6396건으로, 전년(8727건) 대비 무려 317.05% 증가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종합대책'을 시행하고 불법 유통 사이트 누누티비 운영자를 검거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저작권 보호 전문기관인 한국저작권보호원을 통해 다양한 보호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불법 콘텐츠 유통 방식은 개인간거래(P2P) 스트리밍, 비트토렌트파일시스템(BTFS), 클라우드,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등으로 빠르게 다양화하고 있다. 콘텐츠의 디지털 특성상 복제가 쉽고 유통이 빠른 데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불법 유통 환경을 손쉽게 조성할 수 있는 현실에서 기존의 단속 중심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제는 법 집행과 병행해 저작권 보안 기술을 통한 사후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 포렌식 기술은 불법 콘텐츠의 생성부터 유통까지 전 주기를 추적하고 증거를 확보해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실제로 불법 콘텐츠 사건 해결 과정에서 포렌식 기술은 불법 수익 추적, 유통 경로 분석 등 사건 해결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법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콘텐츠 범죄 분야는 단순한 기술 이해를 넘어 저작권법 등 법률과 기술을 융합적으로 이해하는 역량이 필수적이지만, 국내 대학에서 이러한 융합 역량을 갖춘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과정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경찰청, 인터폴, 한국저작권보호원과 함께 K콘텐츠 저작권 침해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 체계를 구축해 해외 기반 불법 유통 범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필리핀에서 국내 콘텐츠를 무단 송출한 운영자를 검거했고, 올해 베트남에서 불법 재생 사이트를 운영하던 총책 2명을 검거하는 등 실질적 성과도 거뒀다.
이처럼 K콘텐츠 범죄는 단순히 국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넘어 해외 서버와 CDN을 활용한 국제적 범죄의 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국제공조 수사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해외 서버를 통한 불법 유통 행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디지털 증거 확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증거의 진정성·무결성을 확보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저작권 보안 전문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현재 국내 수사기관 및 관련 기관에는 저작권과 저작권 보안기술 역량을 모두 갖춘 융합형 전문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불법 콘텐츠 유통에 대한 사후적 대응 역량과 범죄 사실을 증거로 해석·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음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정부는 K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제는 단순한 확산 정책을 넘어 콘텐츠 보호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콘텐츠 이해, 저작권법, 저작권 보호기술, 디지털포렌식을 융합한 실무형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수사기관과 저작권 보호기관 재직자를 대상으로 법제 및 저작권 보안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재교육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계가 구축된다면 우리나라의 K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확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산업 보호 차원을 넘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AI와 디지털 대전환 시대, K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유통·확산 정책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전문 인재가 필요하며, 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술을 이해하고 이를 법의 언어로 해석해 콘텐츠를 지킬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전문가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정부가 내세운 K콘텐츠 300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저작권 보호 체계와 이를 이끌어갈 전문 인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K콘텐츠는 단순한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와 직결되는 자산이다. 그러나 AI·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악용한 불법 유통 범죄가 확산한다면 이는 산업을 넘어 국민 전체가 피해를 입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불법 유통이 지속된다면 창작자들은 정당한 권리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창작 활동이 위축되고, 이는 결국 국민의 콘텐츠 소비 기회 축소와 해외에서의 K콘텐츠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견고한 콘텐츠 보호 체계 구축과 이를 이끌 전문 인재 육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를 통해 우리 대중문화인과 국민 모두가 안전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창작하고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힘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그 경쟁력을 지키는 핵심은 저작권 보호 기술과 보안 인력이다. 이제는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만큼이나, 이를 지키는 기술과 보안 인재 양성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고, K콘텐츠 300조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홍준호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hjh@sungshin.ac.kr
〈필자〉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정보보호, 개인정보보호, 산업보안, 지식재산권 법정책 등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법이론실무학회 부회장, 한국지급결제학회 부회장, 한국법학회 총무이사, 개인정보보호법학회 상임이사, 한국정보보호학회 이사,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상임이사,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 이사,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