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피셜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나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어 가치를 키우는 일, 이른바 ‘셀프 브랜딩’의 시대입니다. 연예인이나 유튜버가 아닌 평범한 이들 역시 자신만의 콘텐트를 만들고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며 ‘상품성’을 만들어 가는 데 관심을 보입니다. 실제 직장인 10명 중 9명 이상(95.3%)이 ‘커리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20대는 이직을 위해, 30·40대는 자신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셀프 브랜딩을 시작한다고 해요(2024 잡코리아×눜 설문조사). 나이를 먹고, 일터를 옮기고, 자기계발에 힘쓰는 과정에서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핵심이고요.
최근 배우 진서연이 내놓은 에세이집『견딜겁니다』는 이런 셀프 브랜딩의 추세에서 눈길이 가는 신간입니다.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그가 9년간 차곡차곡 써온 일기를 엮은 것으로, 그저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던 세월 속 ‘견딤’의 이야기를 담아냈죠. 이 책은 ‘자기 확신’과 ‘진짜 나를 지키는 여정’이 셀프 브랜딩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데요, 그는 어떻게 ‘나답게’ 존재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냈을까요. 비크닉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보여주기…‘진서연식’ 브랜딩
『견딜겁니다』책의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진서연은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거칠게 풀어내는 것에서부터 브랜딩 철학을 확립했어요. 작품활동 외적인 부분에서도 ‘진서연’이라는 브랜드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리하고 운동하거나 독서모임을 가지는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죠.

Q. '나'를 책으로 담아낸 계기와 여정이 궁금합니다.
A.힘들 때마다 써온 일기를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부터 ‘별제이’라는 필명으로 일부를 공개했고, 이를 본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책 작업이 시작됐어요. 책으로 엮기까지는 2~3년간 고민이 필요했어요. 책으로써의 필요성을 스스로 설득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모은 글을 정리하며 확신이 생겼죠. 글을 3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덕에 제3자의 시선에서 저를 바라보고,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듬을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강해 보여도 누구나 고통스럽고 연약한 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고요.
Q.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요.
A. 책을 쓰는 과정은 결국, 저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를 되짚으며, 두렵고 불안했던 시절에 쓴 글들을 다시 마주했죠. 그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용기를 내기 위해 쓴 글들이니까요. 글을 정리하며 깨달은 건, 누구나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신념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어요. 모두 제가 직접 겪은 일이기에 더 단단하고 진하게 다가오고, 그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 자연스럽게 힘을 만들어줬고요. 제가 살아가면서 ‘왜’를 찾기 위해 일기를 썼듯, 누구에게나 ‘왜’를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배우-작가의 연결점…내면의 강한 힘 기른 여정

232쪽에 달하는 이번 책의 무게만큼, 진서연에게도 내면의 강한 힘을 기르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요. 이런 모습은 여배우들의 철인 3종 경기 도전기를 담아내 화제가 된 tvN 예능 ‘무쇠소녀단’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진서연이 평생의 트라우마였던 바다 수영을 해냈으니까요. ‘완벽해서 하는 도전’이 아닌, ‘극복하고 채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관전 포인트였던 것처럼, 그는 책에서도 “과정 안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매일매일을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쫓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Q. ‘배우로서의 진서연, 작가로서의 진서연’의 연결점이 있다면요.
A. 배우 진서연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실현하는 사람이고, 작가 진서연은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 직접 써내려가는 사람이에요. 이 둘은 결국 연결된다고 봐요.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몇 달간 한 인물로 몰입하는데, 충만한 감정이 얼굴과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요. 그렇게 쌓인 삶의 조각들이 결국 저를 더 단단하고 깊이 있게 만들고, 꾸미지 않아도 눈빛 속에 이야기와 무게가 스며들게 하죠. 우리 모두 ‘나’로서 존재하고,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식의 메시지가 자연히 책에 녹아들게 됐죠.

Q. 배우 생활 중 ‘견딤’이 중요하다고 느꼈을 텐데, 극복 방법이 있었나요.
A. 배우는 ‘필요한 시점’과 ‘맞는 캐릭터’가 될 때 기회가 옵니다. 불안정함 속에서 배우라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찾는 과정과 공부가 필요한데, 저는 요가·명상·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는 훈련을 해요. 누가 나를 풀잎이라 해도, 내가 소나무처럼 단단하다는 믿음도 필요해요. 고독을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일부러 선택해 두려움과 마주하는 연습도 중요하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무작정 뛰기라도 해보세요.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가니까요. 동기부여 책만 읽는 것보다, 뭐라도 행동하고 실천해야 와 닿는 게 남다를 테니까요.
긴 터널 지난 뒤, ‘엄마적 사고’가 이끌 오늘과 내일

결국 ‘단단한 사람’이라는 게 진서연의 브랜딩 포인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셀프브랜딩을 도전하는 이들에게 “‘누군가가 좋아할 나’를 만들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기존에 있는 무언가에 내 색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어요. ‘여배우답게’가 아닌 ‘진서연답게’. 기준은 남이 아닌, 나의 철학으로 이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죠. ‘엄마적 사고’라는 진서연만의 철학도 뒷받침되었다고 해요.
Q. 진서연님만의 ‘엄마적 사고’가 SNS에서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멘탈 관리’ 비결이 궁금합니다.
A.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바쁘셨고, 형제자매들도 각자 일에 몰두하느라 제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깨달았죠. 나를 아끼고, 사랑해줘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요. ‘엄마적 사고’도 같은 얘기입니다. 내가 나에게 ‘엄마처럼’ 애정을 쏟고, 몰입하기 시작하면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요. 고통을 이겨내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내면 작은 것들에도 충만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죠. 매일 일기에 감사한 일을 세 가지씩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달리 보여요.

Q. 배우, 작가를 넘어 ‘넥스트 진서연’은 어떤 모습일까요.
A. 저는 되고 싶은 것도, 경험하고 싶은 삶도 많아요. 언젠가는 뉴욕 모마(MoMA) 미술관 같은 공간에서 퍼포먼스와 전시를 선보이고 싶어요. 영상 제작, 시나리오·소설·에세이 집필 등 다양한 창작 활동도 계속하고 싶고요, 팝업스토어를 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저의 ‘건강 레시피’를 소개하며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 모든 활동은 내가 주체고 ‘나’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부로 이어져요.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될 것 같은 미래의 제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