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르포 "안정 위해 8대0 잘 됐다" 이재명 상대로는 백가쟁명

2025-04-07

도로변 벚꽃 나무가 화사하게 만개했지만 부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꽤 쌀쌀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8대0으로 파면을 선고한 다음 날인 지난 5일, 부산역 광장은 한산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었다. 하지만 토요일인 이날 그런 집회는 열리지 않았다. 한 무리의 동남아 사람들이 광장에서 행사를 하는 모습만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이지만, 민심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빠르게 이탈하는 듯했다. “난 탄핵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역 광장에서 수십m 떨어진 골목에서 식당을 하는 주모(58)씨는 찌개를 끓이며 말했다. 파면 선고를 TV로 봤지만 “전혀 가슴이 안 아팠다”고 했다.

“한참 잘못됐잖아요. 계엄이라는 거는 옛날 전두환 시절에 얼마나 큰 피해를 봤어요. 국민들도 놀래고…. (윤 전 대통령)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도 민주당에서 해대니까. 그래도 계엄은 아니지.” 주씨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저녁 손님이 줄어 손해를 봤다가 요즘 조금씩 회복 중이라고 했다.

"뽑아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

지난 대선 때 윤 전 대통령을 찍었다는 그는 “내가 뽑아서 성공한 대통령이 아무도 없다”고 씁쓸해 했다. “윤석열이 찍어 갖고 탄핵 됐지, 박근혜 찍어 갖고 감방 갔지, 노무현 찍어 갖고 그리 됐지, 찍은 사람마다 아닌 거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표를 줬었다는 주씨는 남편에게 이번 대선에선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남북처럼 갈라졌는데 이재명 대표가 들어오고 나서 더 그런 것 같다”며 “대선에선 당선될 것 같은데, 국민의힘에 인물이 안 보이니 투표하러 가기가 싫다”고 했다.

탄핵 선고가 내려졌던 전날 저녁 단골손님들이 이 대표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아이고 어제 식사하면서 60대 한 사람은 이재명을 씹어 대고, 40대 한 사람은 이재명이가 왜 싫냐카고, 서이서 앉아갖고 핏대를 세워서 난리 난리…. 하도 안 가고 그래서 상을 치워버렸다니까요.”

헌재 재판관들이 8대0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국가 안정을 위해 잘한 일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동구 초량시장에서 고깃집을 하는 이모(53)씨는 “처음에는 탄핵이 5대3 정도로 기각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갈수록 기각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식으로 됐다가는 나라가 쪼개지기 때문에 이쪽이든 저쪽이든 8대0이 돼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김모씨(58)도 비슷했다. “마 잘 됐다고 봅니다. 탄핵이 안 돼도 골치 아프다 아닙니까. 탄핵 되면 선거 준비해야 해서 서로 물고 늘어지는 건 없을 거 아닙니까. 복귀하면 또 내내 싸웠을 건데….” 그러면서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불경기를 한탄했다. “계엄을 선포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손해가 얼맙니까. 미국하고도 관세 폭탄 맞고 앉았는데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부산역이나 김해공항 가보이소, 외국인이 안 들어오니 택시도 줄로 쫙 서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빨리 뽑혀서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요새 만나면 그럽니더.”

정권 교체 48% 정권 유지 42%

부산·경남 등 PK 지역은 대구·경북(TK)과 함께 보수 성향이 강한 국민의힘 지지기반이지만 강도에선 TK와 차이를 보인다. 탄핵 선고 이후인 지난 4~5일 한국갤럽이 서울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한 데 따르면 PK에서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4%, 국민의힘 42%였다. TK에서 25% 대 59%인 것과 대조적이다. PK에선 정권 교체 48%, 정권 유지 42%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낫다는 여론이 다소 많은 반면 TK에선 정권 유지가 57%로, 정권 교체 34%를 압도했다.

이 대표는 TK에선 김문수·오세훈·한동훈·홍준표 후보 등과의 가상 대결에서 18~31%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하지만 PK에선 39~43%를 얻어 국민의힘 예상 후보들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부산역 광장에서 열리던 집회는 사라졌지만 헌재 선고 이후에도 소규모 찬반 집회는 열리고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5일 오후 4시 서면 거리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는 20~30명가량이 참여했다. 이들은 내란 세력 척결, 민주정부 건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반면 서면역 부근에선 수십명이 집회를 개최하고 부정선거 진상 규명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서면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43)씨는 “부산에도 이재명 대표 지지가 꽤 있는데 대부분 40대 이하 연령대라고 보면 될 것”이라며 “나이가 많은 층은 대부분 빨간색(국민의힘)을 지지하고, 그래도 젊은 층에선 파란색(민주당)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어 "40대 아래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는 일부”라고 덧붙였다.

"선거는 깨봐야 알지"

민주당 이 대표를 상대로 국민의힘에서 누구를 내보내야 할지에 대해선 백가쟁명식 의견이 나왔다. 자갈치 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61)씨는 가게 벽에 걸린 TV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군 열 명 가량이 나오는 화면을 보다 “이제는 판이 바뀌었다”고 읊조렸다. 그는 “탄핵에 찬성했다고 국민의힘에서 한동훈 전 대표를 내몰고 그랬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고 명태균 관련해서도 나오는 게 없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와 붙어볼 사람은 한동훈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에 대한 반작용이 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지금으로선 민주당에서도 이재명 이길 사람이 없고, 국민의힘에서도 이길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엄마와 아빠가 싸우다가 엄마가 저리됐는데, 엄마한테만 뭐라고 할 수 있나? 아빠 너도 잘못했잖아, 원인 제공자잖아. 그런 여론이 일 거에요.”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개인택시 기사 이모(64)씨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해 박한 평가를 줬다. “대선에서 이재명이 될 확률이 안 높겠습니까. 국민의힘에서 누구든 나오긴 할 텐데 김문수? 아직까지 그건 모릅니더. 좀 허풍 같기도 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나오면은 아무래도 표를 더 많이 얻지 않을까 봐요. 한동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검사들이 자꾸 실패를 하니까네….”

다른 기사 정모(54)씨의 의견은 또 달랐다. “부산에는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도 공약이나 정책을 보고 해야지 무작정 누구를 찍진 못 하겠고…. 국민의힘에서는 정치 경험이 있는 홍준표가 안 낫겠어요? 경남도지사 할 때 빚이 많았는데 다 갚았다고 하고, 노조 대응도 잘하고…. 지금은 이재명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선거는 깨봐야 알지. 우리가 동네 구의원 하나 뽑을 때도 '니 무조건 된다' 해서 나와도 막상 뚜껑 열어보면 아니거든.”

PK가 캐스팅 보트로 꼽히는 이유

한국 선거에서 대표적인 ‘캐스킹 보트’로는 충청권이 꼽힌다. 하지만 부산·울산·경남(PK)도 그에 못지않게 승부를 가르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역대 대선을 치르는 동안 ‘PK 민심을 얻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PK는 권역별 유권자 비중이 수도권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지역에 해당한다. PK에 연고를 갖고 있으면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출향 인사들까지 합하면 전체 유권자의 25%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까지 있다.

PK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는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당시 PK 득표율이 72.83%였다. 반면 PK 공략을 다소 소홀히 한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대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PK에서 29.43%를 얻고 당선됐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의 경우 인구가 적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수도권에서 큰 표 차이로 이긴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영남에서 득표율이 현저하게 낮으면 대선 승리 가능성은 작아진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등 PK 지역 연고가 있는 후보를 대선에 내세우곤 했다.

최근 치러진 4·2 재보선 결과 경남 거제시장에서 민주당 변광용 후보가 당선됐다. 조선소가 있어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있다고 해도 국민의힘 박환기 후보를 18.63%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부산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진영 김석준 후보가 당선됐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PK 지역 민심의 흐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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