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각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쌀산업 수출 전략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기존 주요 시장이었던 중앙아메리카를 벗어나 일본·한국 등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공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최근 미국이 일본의 고율관세를 언급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파악돼 쌀시장 구조가 유사한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최근 ‘쌀-글로벌 경쟁력과 무역 및 미국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USITC는 대통령 직속 준사법기관으로,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보고서는 2018∼2023년 미국과 인도·태국·베트남 등 주요 쌀 생산·수출국의 현황과 각국의 수입 정책 등이 미국 쌀산업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국내 생산량의 45%에 해당하는 약 300만t의 쌀을 수출했으며, 인도·태국·베트남·파키스탄에 이어 5위 수출국에 올랐다.
다만 2018년 대비 2023년 미국의 수출량은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 시장인 중앙아메리카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과 미국·중미 자유무역협정(CAFTA-DR)에 따른 관세 우대와 물류 이점 등을 토대로 멕시코·코스타리카 등을 주요 수출 대상국으로 삼아왔으나, 이같은 관세 우위가 브라질 등 다른 국가로도 확대되면서 시장 점유율을 잃었다.
보고서는 “2022년 미국의 벼 최대 수입국인 멕시코가 (다른 나라에 대한) 수입 관세를 일시적으로 철폐해 2018∼2021년 83∼100%였던 미국 쌀의 멕시코시장 점유율이 2022년 45%로 떨어졌다”며 “장립종 쌀 최대 시장인 아이티에서도 점유율을 잃어 수출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기간 상대적으로 일본·한국 등 중립종 쌀시장은 안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일본과 한국은 캘리포니아 재배자에게 중요한데, 중립종 쌀에 대한 수요가 있고 품질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보고서는 ‘일본의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확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일본이 의무수입하는 쌀 가운데 미국산 비율을 확대하는 경우로, 미국의 쌀 생산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결과를 담고 있다. 향후 미국 쌀산업의 관심이 일본·한국 등 동아시아에 쏠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일본의 쌀 TRQ에 대한 할당량 한도가 더 높아지면 미국 생산량은 최대 12만t, 수출은 10만t까지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며 “반면 일본의 생산량은 최대 1.3%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분석했다.
최근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쌀 관세가 700%에 달한다”고 지목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전략 수정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 또한 일본과 유사한 TRQ 수입 제도를 유지하는 만큼 미국과 일본의 쌀 협상 움직임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일본에서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안건을 던진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 한국 쌀산업 우선순위가 높지 않겠지만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