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라는 간판만 믿고 돈을 빌렸다가 불법 고금리 덫에 걸려 피해를 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등록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 모두 대부업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 보니 절박한 상황에 놓인 취약계층이 불법 업체를 등록 업체로 오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
복수의 대부업계 관계자들은 합법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 간 대출 계약 등 여러 부문에서 차이가 크지만, 상호만으로는 이를 구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에서는 등록 대부업자 외에는 대부라는 상호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불법 사금융업자가 이를 어기고 대부라는 상호를 사용하더라도 적발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 공감한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등록 대부업체 중 우수 업체에 한해 '생활금융'이란 상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27일 우수대부업자에 '생활금융' 상호를 허용하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저소득층 창업·주거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신용대출사업 실적 등을 충족하는 대부업자를 '생활금융 우수대부업자'로 지정할 수 있고 명단을 고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우수대부업자 요건은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저신용자 대출비중이 70% 이상이거나 저신용자 신용대출잔액이 100억원 이상인 등록 대부업체를 우수업체로 선정하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요건을 충족하는 우수 대부업자는 생활금융이라는 상호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이 법안은 제21대 국회(2020년 6월~2024년 5월)에서도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된 바 있다. 박수영 의원(국민의힘)이 2021년에도 금융소비자 보호와 대부업 인식 개선을 위해 대부업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2년 넘게 정무위원회 법안 소위에 계류되며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당시 정무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안 소위에 보류된 중요한 법안들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취약계층들이 대부업 명칭을 혼동해 불법 사금융을 합법적인 대부업체로 착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대부금융협회가 지난해 8월19일부터 23일까지 대부업을 인지하고 있는 102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 조사를 한 결과 등록 대부업체와 미등록 대부업체를 구별한 건 전체 응답자 3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응답자들(79.4%)는 부정적 이미지는 대부업 명칭을 생활금융 등 다양한 명칭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불법 사금융업자가 취약계층을 상대로 연 이자율 2400~5200%에 달하는 불법 추심을 저지르는 사례는 매년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만약 이들이 합법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을 혼동하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법정 최고금리(20%)를 초과하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은 거창한 대책이 아닌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작은 변화와 노력이 모이면 취약계층을 지키고 금융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